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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사찰

봉림사

by 산드륵 2016.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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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호근동 봉림사.

 

 

오랜 옛터에

1929년 혜봉스님이 용주사라는 사찰을 재건했으나

제주 4.3 사건 당시

무장대와 연루되었다고 하여

용주사 일체가 전소되고

수행자들이 법난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던 사찰이다.

당시 사찰이 전소될 때

용주사 스님은 3자 크기의 석가모니불상과 각단의 탱화를 등에 지고

서호동의 박애작 동산으로 피신을 하기도 했다.

 

 

이후

용주사가 불타버린 자리에

현재와 같은 봉림사가 재건된 것은

1983년 일경스님에 의해서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이름을 헤어리기도 어려운

온갖 나무와 꽃들이

4월처럼 반짝인다.

 

 

초파일 전에

모든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피어나 스스로를 찬탄할 것이다.

그것이 꽃의 기쁨.

그것이 스스로 피어 세상을 미소짓게 하는 꽃의 의미.

그것이 붓다가 이 땅에 오신 또다른 의미.

 

 

봉림사 대웅전.

1994년 완공되었다.

 

 

이 절에는

날마다

꽃을 공양하는 스님이 계신듯

사찰 경내가

온통 꽃들로 둘러싸여 있다.

 

 

요사채

 

 

정갈한 후원.

날마다 잡초를 뽑아주지 않고는

이런 후원을 만들기 어렵다.

일상이 수행이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과

좌우 협시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

4.3 당시 피난갔던 탱화 중 일부는

법정사에 모셔져 있었으나 모두 소실되고 없다.

현재의 봉림사 대웅전의 불상과 탱화 등은

모두 새롭게 봉안된 것이다.

 

 

꽃으로 장엄한 붓다의 세계

 

 

빗방울마저

보석처럼 반짝인다.

 

 

봉림사 용천수.

 

 

어느날

이 사찰의 스님이

인근 마을의 한 아이가 매일 이 물을 떠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다.

스님이 연유를 물으니 아이가 답하길

편찮으신 어머니가 계신데 사찰의 물을 마시면 낫게 될 것 같아

매일 물을 떠가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어머니는 건강을 회복하였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사찰을 찾아왔다.

 

 

봉림사 신도였던 노보살도

법당 밖에서 펑펑 울리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나가보니

용천수가 힘찬 소리를 내며 흘러넘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제주 물맞이 풍습에 따라

마을 아낙들이 물을 맞으러 이곳을 찾았으나

물은 곧 줄어들고 말았다.

이 일 이후로

정성이 지극해야

이곳에 물이 넘친다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마음에 꽃을 피워본 이들만이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우리들 중

몇몇이

미소로 답할 그런 이야기이다.

 

 

 

이곳 봉림사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

 

 

그리고

새롭게 인연을 맺는 이들 모두

마음에

고운 꽃 한 송이씩 피우시길 발원한다.

 

 

봉림사 아래 하논마을은

4.3 때 잃어버린 마을.

봉림사가 불태워졌듯이 불태워져 사라진 마을이다.

 

 

이제는

잃어버린 마을로서가 아니라

한반도 최대 규모의 마르형 분화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바닷속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호수를 형상화해놓은 사진이다.

 

 

지금은

물이 거의 빠졌고

논으로도 사용되지 않는다.



넓은 화구원은

아직까지는 축축하게 젖어 있다.

 

 

그러나

시간이 더 흐르면

늙어갈수록 마음이 바싹 말라가는 인간들처럼

아마 더 바짝 말라버릴지도 모르겠다.

 

 

땅이 아직 젖어있으니

백로가 날아온다.

죽기 전까지는

마음의 물기가 마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챙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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