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개었다.
가을이 들었다.
걸망도 없이
성산읍 신풍리 남산봉을 찾았다.
옛날에는
성읍 영주산을 앞산
그리고 이 남산봉을 뒷산으로 불렀는데
이 남산봉 정상에는
성읍의 정의읍성을 방어하기 위한 봉수대가 있어서
망오름으로도 불렸다.
비개인 숲길
낮게 깔린
숲의 향기를 따라
다들 가을로 간다.
쥐꼬리망초
여우팥
그들이 먼저 고개를 내민
가을의 초입.
젖은 숲향이
발목을 적신다.
표고 178.8m의 나즈막한 산.
두개의 봉우리가
봉긋봉긋 연이어 솟아있는 오름인데
어느 방향으로 가도
나즈막한 숲길이긴 마찬가지.
봉수대 방향으로 먼저 걸음을 옮긴다.
남산봉수.
정의현에 소속된 봉수로서
달산봉수와 독자봉수와 교신했는데
해안에 가까운 곳에 설치된 다른 봉수들과는 달리
내륙 깊이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아
정의현의 주요 연락망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봉수 중심부를 세우고
고랑과 둑을 이중으로 쌓아놓았던
봉수대의 원형이 비교적 충실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보호목이 봉수의 중심부 안에 설치되어
겹으로 쌓아놓은 고랑은
그 의미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잘못된 복원은
차라리 하지않은것만 못하다는 것을
여기서도 깨닫게 된다.
나무와 숲
그리고 곶자왈로 이어진 길 끝의 오름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이어진 존재임을 바라보지 못하고
우뚝 솟은 동산만 오려내어 보존하려는
제주행정의 또다른 모습은
독자봉까지 4km, 달산봉까지 4,5km
시야를 가리는 오름하나 없이 탁 트였던
봉수대의 환경을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데서도 알 수 있다.
봉수대 방향에서는 바라볼 수 없었던
영주산의 귀퉁이와 백약이, 높은오름, 좌보미와 다랑쉬가
터진 숲 사이로 환하다.
가을길을 걷는다.
모든 것이 용납이 된다.
아주 가을빛이 되어 하산한다.
도시에서 일주일쯤은
가을빛으로 떠돌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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