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어디에서든
너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올해도 그렇게
우리는
가을을 맞았고 가을을 보낸다.
다시 찾은 남원읍 신례리의 이승이오름.
오늘은
표고 539m, 비고 90m 내외의 이승이오름 정상에 먼저 오른 후
이승이오름 기슭의 갱도진지와 화산탄 구역을 둘러보고 내려올 예정이다.
바람에 실려온 바다냄새에
고개를 돌려보니
저 아래
제지기오름, 섶섬, 칡오름, 문섬, 영천악.
그러나
바다 풍경도 잠시.
숲이
깊은 숨을 내쉴 때마다
마른 낙엽 냄새만
아스라이 뒤따라온다.
이승이오름 정상에서 마주하는
가을 한라.
사려니오름.
동백나무
사스레피
그리고 굴거리 등
상록수가 대부분인 이 숲에도
군데군데 단풍이 들었다.
단풍나무들조차
초록으로 더욱 짙어질뿐인
이승이의 가을 숲.
초록이 더욱 짙푸러보이는
그 숲 속에서
붉은 상처를 드러낸 갱도진지가
오래전 그날처럼
여전히 버려져 있다.
1945년 제주도에 배치된 일본군 108여단 사령부주둔지는 미악산
주저항진지는 수악
그리고 이곳 이승이오름은 전진거점진지.
출구는 함몰되어
출입이 불가능해보인다.
갱도진지 근처의 숯가마터.
반지하의 석축요이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내가 가을이다라고 속삭이는
도토리.
돋았다 사라지는 것들.
그렇게
일없이 걷다가 만난
이승이오름의 또다른 길목.
이승이오름 북쪽 기슭
화산암과 화산탄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구역으로 들어섰다.
화산 폭발 당시
공중으로 분출되어 굳어진 화산탄들은
그 무게 때문에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대부분 굼부리 인근 지역에 흩어진다고 하는데
이승이오름의 화산탄들은
그 크기가 상당할 뿐 아니라
독특하게도
각각의 화산탄마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기이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화산탄과
화산탄을 감싸고 있는 나무뿌리들.
화산탄이
먼저 공중에서 낙하한 이후에
오랜 시간이 흘러
나무가 뿌리를 내렸겠는데
특이한 것은
대부분 바위틈새로 뿌리를 내리지 않고
바위를 감싸듯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수종도 다양하며
수령 역시 매우 오래된 것들로 보인다.
바위 하나에
나무 한 그루.
회색 화산재로 뒤덮였던
이곳에
바람 타고 날아온 씨앗 하나가
오늘의 이 숲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숲.
그 나무와
그 숲
그리고
그 사이로 불던 바람의 이름이
바로 인연법이겠다.
그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갔다가
먼훗날 다시 찾아와보면
그때는 또 어떤 모습일지 매우 궁금하다.
가을 숲.
초록도 시든다.
가을 숲.
물빛도 물든다.
이 숲의 모두가
가을임을 안다.
다만
가을을 잊어버린 기슭의 단풍나무들은
초록의 그 모습 그대로 겨울을 맞지 않을까
그것이 근심스럽다.
어디쯤에선가
길이 막혀
이 숲에 도착하지 못한 가을이
근심스럽다.
꽃향유에게 물어본다.
가을이 어디까지 왔는지.
한라가 답한다.
가을은
하산하지 않기로 했다.
2016 대한민국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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