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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있길래

김녕한옥 용암정원

by 산드륵 2017.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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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해수욕장.



운명과의 만남처럼

심장을 두드리는 풍경.

그런 것들은

겨울에 밀려오지.



바람에 밀려오지.



하늘은 맑은데

얼굴에 꽂히는 햇살은 얼음송곳같고

하늘은 맑으니

바람이 쳐낸 파도는 기어이 벼랑을 차고 비상하지.



이것이 제주의 겨울 바다.

이것이 김녕의 겨울 바다.



이것이 청굴물의 겨울 풍경.


 

그 청굴물에서 걸어서 3분.



모래 묻은 맨발로

뛰어서 1분.



조선 철종 당시 지어졌던 제주인의 집.

그 옛사람은 갔지만

그 후손이 나그네들을 위해 대문을 열어둔 집이다.


 

붓도 제법 잡고

주판도 제법 튕기고

거기다가 소를 내다팔고 술을 받아먹기도 했던 풍류인의 집.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이 집안은

선조부터 대대로

꽃과 나무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백서향.



천리를 간다는 백서향의 향기가

오늘은 이 집 마당에 머물렀다.



지고

또 피고



피고

또 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들.



뒤뜰의 용암정원이다.

용암이 흘러간 자리 위로

모과나무, 감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그리고 따뜻한 햇살.

알겠다.

용암정원 이 집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남긴 것은

붓도, 주판도, 꽃도 나무도 아니고

따뜻함이었구나.

겨울에도 용암은

오래된 햇살 품어 따뜻하다.

맨발이어도 시리지 않다.



벽에 걸린 막개의 기억.



늦은 낮잠의 기억.



돌화로의 온기가 가득하던

대청마루의 기억.




오래된 숟가락의 기억.



그 숟가락이 기억하는 밥냄새.



그리고 유리창 저너머의 수많은 기억들.



소를 팔아 술을 받아먹었지만

멍에는 팔아먹지 않았다.

진정한 풍류인. 



오래된 라디오가

치직치직거리면

금방이라도 저 너머에서 그리운 목소리가 다가올 듯하다.



오래된 공간 안의 위로.

벽에 기대어 

혹은 누워서

하늘 보며 잠들어도 되는 곳.



이곳에서 머물다

오래된 기억 하나 주우면

전복 껍데기에 넣어둬야겠다.



밖거리 다실에서 차 한 잔.

오늘같은 날은

진한 커피를 내려

바다내음과 함께 마신다.



밖거리 작은 방.

한달만 살면

작품 하나는 나온다는

이곳 김녕한옥 용암정원의 정갈함이

도시에서 묻혀온 마음의 번거로움을

가벼이 씻어준다.



그리고 누군가는

벌써

따뜻한 기억 하나 남기고 갔다.

가벼이 뛰어올라

풍덩.

한사람 한사람

소중히 여겼던 그 젖은 기억 속으로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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