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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보령 성주사지

by 산드륵 2017.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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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사지.



백제 법왕이 아직 왕세자였던 599년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의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오합사라는 사명으로 창건하었다.

백제의 멸망을 앞두고는

흰말이 이곳 북악의 오합사에 들어와

법당 주위를 돌며 울다가

며칠만에 죽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곳은 백제인들의 깊은 원혼이 깃들어 있던 사찰이었다.

.


이 오합사가

통일신라에 들어와

구산선문 중에서 가장 번창한 일문으로 성장하면서

이 산문을 이끌던 무염선사를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은 성주리, 산이름은 성주산, 사찰이름도 성주사로 불리게 된 것이다



2천여명에 이르는

무염선사의 문도들이 머무느라

쌀뜨물이 성주천을 따라 십리나 흘렀다는 이곳은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어

결국 폐사되었다.



보령사 성주사지 삼층석탑.

『성주사 사적기』에는

정광여래 가섭여래 약사여래의 사리탑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주사지 오층석탑



성주사지 석계단.

1986년 원래의 사자상이 도난 당하여

지금은 그 원형을 복원해 놓았다.



성주사지 석불입상.

고려후기에서 조선조에 이르는 시기의 민불로 추정되고 있다.



보령사지 낭혜화상탑비.

구산선문 중에서 성주산문을 일으킨 무염선사를 기리는 탑비이다.

최치원이 썼고 최인원이 새겼는데

통일신라 말기 고승들의 탑비 중에서도 최고의 탑비로 여겨지고 있다.


무설토론(無舌土論)으로

당대의 사상을 휩쓸어버렸던 무염선사.


물었다.

혀가 없는 땅이란 무슨 뜻입니까?


답했다.

선근이 있는 사람은 그 가운데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


물었다.

무설토에는 스승도 제자고 없는데 어찌 서천 28로 당토의 6로까지 법의 등불을 전하여 서로 비추어 지금까지 법등이 끊어지지 않았습니까? 


답했다.

모든 세상에 유포된 것은 올바른 정답이 아니리라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옛 사람의 말씀이 스승이 제자에게 전승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했다.

장경(章敬)이 말하길

세상은 모두 허공과 같아

무상(無相)으로 상(相)을 삼고,

무위(無爲)로써 용(用)을 삼는다.

선을 전하는 것도 이와 같다.

전하지 않는 것으로 전하고, 전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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