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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백운사.
흰구름 속으로 걸어들어갈 때는
잘 몰랐다.
도량에 들어서서야
이곳이 하늘이 마련한 자리임을 알았다.
흰구름이 머물 자리임을 알았다.
극락전.
아주 작은 전각.
그 아주 작은 전각을 둘러싼
그 아주 담담한 산빛이 바람빛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극락전의 아미타불.
그뿐.
그러나 아주 먼 길을 돌아온 이는
이미 짐을 벗었다.
백운사.
성주산문을 개산한 무염선사가
성주사 개산 당시 숭암사로 창건하였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당시 성주사와 함께 소실되었고
이후에 중건하면서 백운사로 사명을 바꿨다.
무염당
개산조 무염선사는
13세에 입당하여
백낙천과 교류하던 여만선사에게 법을 배웠는데
여만선사는 중국의 선이 쇠퇴하면 동이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라 하여
무염선사의 높은 경지를 칭송했다.
신라로 귀국 후에는
구산선문 중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열어 법을 전한다.
구산선원
백운사 곳곳에
무염선사를 잊지 않기 위한 자취들.
꽃의 자취 고우나
허공을 물들이지 않는 것처럼
무염선사 역시
물들지 않는 고운 흔적으로 남았다.
저녁이면
이곳에서 종소리 울려
보령팔경의 하나인 백운사모종을 만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떠돌이 시간은 아직 더디기만 하다.
백운사 제화갈라불의 자리는 비었고
산신만이 다시 올 붓다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때나 백운사 저녁 종소리가 울리려나.
먹기에 바쁜건지
놀기에 바쁜건지
끊임없이 과육을 탐하는 청설모에게
이미 시공은 의미가 없다.
시간을 무너뜨리고 공간을 무너뜨리는 일이
청설모에게는
참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