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서산사.
강창규 스님의 마지막 행적이
멈춘 이 길.
21세기에도
의연히 살아남은
옛사람들의 건축물 앞에서
마음은
이미
여러번의 종소리를 들었다.
서산사.
강창규 스님이
이 서산사를 창건한 것은 1943년.
강창규스님은
1918년 무오법정사 항쟁 당시
중문의 일본경찰주재소에 불을 지르는 등
선봉대장으로 앞장서서 활약하였기 때문에
항쟁 주동자들 가운데
가장 형량이 높은 8년을 선고받았고
이후 감형으로 5년 11개월 8일의 옥고를 치뤄야했다.
강창규스님의 당시 나이 41세.
끓는 의협심으로
오직 조국해방을 위해 앞장섰으나
그들의 법정사는 불태워졌고
친가 동생인 강수오는
일본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했으며
출가 도반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출옥 후
베롱나무 한 그루 심고
의지한 곳이
바로 이곳 서산사.
서산사 대웅전
석가모니불과
좌우협시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그리고 강창규 스님의 서산사 목조보살좌상
중종 29년 조성된 보살좌상으로
강창규스님이 모시고 있었고
1939년에 개금불사를 하기도 했다.
도지정유형문화재 20호로 지정 보호 중이다.
참배하고 나오는데
인연있어 맞이한
부처님 진신사리.
3과의 사리가 또렷하게 보인다.
지난 10여년간
이 길 앞을 지나다닌 것이
오늘의 인연을 위해서였나보다.
인연은 수순할 뿐
거스를 수 없음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서산사 내부의 공덕비들.
창건주 강창규 문말백 기념비.
한 사람의 생애가
그대로 역사가 된 사람, 강창규.
그 강창규 스님의 마지막 행적을 찾아
서산사 후문으로 나선다.
서산사에서
약 50여보를 걸어 내려오면
강창규스님의 입적 장소.
강창규 스님은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서
좌선 상태로
입적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절오백당오백이 불타는
이형상의 시대를 건너
근대시기에
가장 먼저 출가했던 제주인 강창규.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의 선봉대장으로
가장 오랫동안 수감되어 있었으며
출옥 후
쌀 한 톨 구하지 못하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일제와의 타협을 끝까지 거부했던 그 사람.
그 한 사람의 생애가 태산처럼 큰데
서귀포시 대정읍에서는
안내판 한 장도 아까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