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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흙붉은오름

by 산드륵 2018.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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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600고지.



한라의 단풍은

한라의 물길을 따라 내려온다.



단풍이 흘러온

그 길을 따라

한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



예부터

사람들은

한라의 물길이 잠시 머무는

관음사 깊은 계곡에서

한라를 향해 걷는 길을

사랑했다.



제주목사 이원진이 그랬고

충암 김정이 그랬고

가까이는 이은상도 그러했다.



해발 700고지



해발 800고지



바스락거리는 소리



햇살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바람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렇게

바스락 바스락 9부 능선을 넘는다.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흙붉은오름.

한라산 동쪽 방향에서 가장 높은 오름으로

표고 1380.7m 둘레 3403m에 달한다.

천천히 걸으면

왕복 5시간 정도가 걸리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나무의 어깨와

내 눈높이가 비슷해져가니

머지않아 산정이다.



두세시간 강행군에

가끔 다리가 휘청거리기도 하는데

갑자기 달라지는 풍경.

해발 1100고지를 넘었다.

이제 곧 산정이라는 생각보다

훌훌 털어버린

숲의 담백한 모습에

내 마음의 빗장도 풀린다.



흙붉은오름.



참 좋다.



울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든다.



풍경이 주는

담담한 위안.



흙붉은오름 곁에는 한라



이것이

가을숲



샘을 품은 굼부리 너머로는

빽빽한 사람의 집들



성널오름과 사라오름



이 흙붉은오름은

수천만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화산폭발 당시 형성된

붉은 송이가

현재까지 그대로 노출된 채 유지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화산체이다.



한라를 점령한 조릿대도

이 흙붉은오름 정상에서는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화산체의 식생 변화가

이곳에서만은 멈춘 까닭이 무엇일까.



누구나

흙붉은오름 정상에 서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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