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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와 3

기억의 파수

by 산드륵 2023.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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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파수

 

기억투쟁이라는 예술 실천과

예술적 제의라는 미학적 화두를 구현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주 4.3 미술 특별전.

 

오래도록 제주 4.3의 기억을 지켜온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특별전이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년 3월 7일에 시작해서 5월 21일까지 계속된다.

 

 

봉인된 섬 ‘저항’

4.3 당시 희생자 수는 최소 3만명에서 최대 8만명으로 추정된다. 학살은 제주 전역에서 자행되었고 지난날 무자비한 출륙금지령 이후 제주섬은 또다시 역사에서 봉인되었다. ‘봉인된 섬’은 ‘탄압이면 항쟁이다’라는 4.3항쟁의 출발점을 되새기면서 기억과 더불어 도처에 존재하는 저항 개념과 사건의 다양성에 주목한다. 저항은 개인의 일이자 공동체의 일이다. 저항은 미세한 개인 삶의 영역에서 거대한 국가 단위의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저항정신은 4.3항쟁의 핵심 가치이자 예술의 본질적인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붓과 맨주먹으로 4.3정신을 기리고 이어내는 매우 중요한 무기이다.

 

 

한라바람꽃/송명석

 

 

백두불꽃/송명석

고故 김현돈 미술평론가는 4.3 미술에 대해서 “1948년부터 7년여에 걸쳐 이 땅 제주지역에서 벌어졌던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양식과 표현 매체를 빌어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미술”이라고 정의하고, “그것은 또한 막힌 가슴을 뚫고, 상극의 빗장을 열어 상생의 아름다움을 지향한 신명나는 예술적 제의였기도 하다.”라고 했다.

 

 

한중가-조상/김수범

죽은 조상의 무덤 앞에 영혼의 심부름꾼 동자상을 세워 놓았던 제주전통 양식을 제구성하여 위로와 애도의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이미지 전쟁-달력/김수범

술집마다 걸려있던 달력에 콜라주로 조형화한 ‘아름다운 쓰레기’의 연작으로 4.3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리는 작품이다.

 

 

살殺의 정치사 - 이슬로 지다/오석훈

가족이 행방불명된 유족들은 제삿날을 대부분 생일에 치른다. 우리 헌법에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재판은 없었다. 그러니 재판 기록도 있을리 없다. 법이란 합법적 절차에 의해 제정되고 공포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초법적인 ‘게엄령’에 근거하여 내란죄, 여적죄, 간첩죄라는 명목 하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미군정과 그들을 추종하는 집단 이데올로기와 눈먼 충성이 많은 희생을 낳은 것이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정치적 집단 학살인 것이다. 목포, 마포, 대구, 인천, 전주 등 육지 형무소로 분산 수용되어 있던 제주 수형자들은 한국 전쟁이 벌어지자 재판없이 처형되었다. ‘살殺의 정치사 이슬로 지다’ 작품은 작가가 당시 수형 기록을 찾아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되살리고 그 위에 수형 번호를 적어 넣었다. 수형인의 넋을 신원하고 명예를 되찾기를 바라듯이 제주 4.3의 정명에 대한 간절함이 담긴 구도적 작업이다.

 

 

갱(坑)-국가테러/오석훈

 

 

수장/강문석

4.3당시 돌에 묶여 수장되어야 했던 제주인들

 

 

왕과 투사와 우체부/홍덕표

서양에서 지혜의 상징은 까마귀였다고 한다. 그러나 죄를 짓고 부엉이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그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까마귀의 깃털로 치장을 했다. 지식인들의 양면은 그렇다. 4.3을 왜곡하는 흰쥐를 밟아 버리고 눈이 가려진 제비의 눈을 뜨게 하여 4.3행불인들의 안식을 찾아주고 싶기는 하지만 현실에서의 지식인들은 여전히 침묵하거나 권력에 아첨할 뿐이다.

 

 

광야1950, 1,2,3/고길천

총알도 아까워 바다로 버려지는 사람들

 

 

광야1950, 1,2,3/고길천

 

 

광야1950, 1,2,3/고길천

 

 

1994년 제1회 닫힌 가슴을 열며

그리고 2023년 기억의 파수

 

 

4.3항쟁의 고유한 가치는 그것이 ‘전격적인 반분단 운동’이었다는데 있다. 대립과 갈등의 냉전 구도에 반대하는 4.3정신의 동시대 버전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드리운 대립과 갈등 구도를 극복하는 일이다. 따라서 4.3정신을 담은 4.3미술의 역사적 과제는 4.3미술을 제주도 바깥과 연대하는 평화예술로 확장하는 일이다. 그것은 4.3미술이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며 기억투쟁을 벌여온 세월을 지나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4.3항쟁을 다시 들여다보고, 지역적 특수성과 세계사적인 보편성의 관점에서 평화의 서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어떤 풍경 중에서/김준기>

 

 

산곡(山谷)에서/강요배

예술은 기성의 권력과 권위, 관습과 일상, 가치와 믿음에 대한 자유이고 해방이며 일탈이다. 근엄하고 엄숙한 것을 뒤집고, 비틀고, 조롱한다. 억눌리고 맺힌 것을 풀고, 막힌 것을 뚫고 닫힌 것을 여는 제의이며, 열린 생명을 지향하는 신명나는 축제의 마당이어야 한다. 예술의 기원을 일개인의 천재적 영감의 산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제의에서 찾는 것은 결코 범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이 예술의 본연이다. <4.3미술의 의의와 성과, 그리고 전망/김현돈>

 

 

꽃같은 시절/고경화

 

 

신원굿/오윤선

 

 

지워진 사람들 중에서/양미경

 

 

불칸낭/정용성

 

 

바람-제주붉은대숲/이기홍

 

 

한라에서 백두까지-백두산/이경재

 

 

한라에서 백두까지-한라산/이경재

 

 

그래도 꽃은 핀다1/부이비

 

 

내일은 늙어간다/홍덕표

 

다시 맞은 봄 ‘공동체’

자각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탑동, 사패산, 새만금, 청성산, 대추리, 강정, 밀양... 모두 좌절과 실패의 역사이다. 권력과 자본만이 아니라 개발과 성장으로 무장한 이웃들의 장밋빛 미래와 싸워야 했기에 우리는 늘 실패했다 그 길이 옳음을 알기에 패배를 알고도 걸음을 옮겨왔다. 그 길은 지난날 험준한 한라산에서 7년을 버티어 낸 마지막 무장대의 우직한 발걸음이자 냉혹한 봄날 따스한 단꿈이었다. 4.3미술은 4.3항쟁의 가치의 확대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국내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동시대적인 저항운동과 함께 연대한다. ‘다시 맞은 봄’은 세계 곳곳에 산재한 공동체 정신을 공유하며 4.3미술의 동시대적 실천을 도모하는 연대이며 장이자, 지난 봄날의 좌절된 꿈이 아닌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자각이며, 아름다운 실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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