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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와 3

주정공장수용소 4·3역사관

by 산드륵 2023.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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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공장수용소 4·3 역사관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삐라를 보고 아이들 손을 잡고 내려왔으나 이곳 주정공장에 갇혀 있다가 굴비엮이듯 여러 사람과 묶여 부둣가로 실려갔다. 포승줄도 아니고 갈치묶는 줄에 묶여 총살 당하고 수장 당했다. 부둣가 뱃전은 벌건 피가 흥건했다. 뱃사람들이 묵묵히 그 피를 물로 씻어내기를 반복했다.

 

 

1948. 4·3

 

 

제주사람들에게는 살아서도 한라산 아니면 바다 밖에 없고, 죽어서도 한라산 아니면 바다 밖에 없는데, 제주 4·3 당시에는 한라산도 바다도 모두 안전하지 않았다.

 

 

추모의 방

 

 

주정공장 수용소에 갇혀있다가 육지수용소로 옮겨져 옥살이를 하다가 어렵게 얻은 편지지에 사연을 담아 적어 보낸 이들의 질긴 기억이 그림자처럼 묻혀있다.

 

 

어머니,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동양척식회사가 직영한 제주 주정공장은 일제 말기인 1943년 준공되어 1970년대 말까지 가동된 가장 큰 산업시설이었다. 이곳은 제주 4·3 당시 민간인을 가두는 최대의 수용소로 이용되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제주 성곽 3분의 2를 헐고 매립하여 만든 산지항은 전쟁 수행을 위한 수탈의 산업 시설로 이곳 주정공장에서 만들어진 알콜은 항공기 연료로 쓰였다.

 

 

1948년 5월 제주항의 모습. 산지항 개항으로 제주의 원형은 완전히 왜곡되었으며 제주 대촌은 수탈을 위한 기지로 변형되고 말았다. 일제는 제주의 자본만 수탈한 것이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정체성까지 모두 수탈하고 왜곡시켰다.

 

 

동양척식회사 주정공장은 193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43년에 완성하였는데 고구마를 원료로 생산된 95% 농도의 알콜은 항공기 연료로 일본군에 납품되었다. 그러다가 1945년 6월 미군기의 폭격으로 주정공장 건물 절반이 파괴되었다.

 

 

동양척식회사 주정공장

 

 

주정공장과 산지항.

 

 

지역별 제주 4·3 희생자. 군경은 전도에 걸쳐 빗자루로 쓸듯 쓸어내리며 인간 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이승만 정권의 인간토벌작전의 무대가 되었던 제주. 이승만은 남한단독선거로 해방조국을 분단시키고 대통령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했으나 남한에서 유일하게 제주도에서 5·10선거를 보이콧하자 제주도민 학살 계획을 세우고 1948년 10월 17일 포고령을 내린다. "해안선에 5km 이외 지점을 통행하는 자는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총살하겠다."

 

 

이어서 1948년 11월 17일에는 불법 게엄령이 내리고 약 4개월 동안 처절한 살육이 시작되었다. 방화와 살육은 차라리 무섭지 않았다. 서북청년단의 비인륜적 폭력행위는 기록하기도 어렵다.

 

 

간과 뇌가 들판을 물들였다던 어름비전투 당시에도 이렇지는 않았을 거라고 했다. 탐라국 이래 최대의 학살 현장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한라산으로 향했다. 군은 그들을 향해 귀순공작을 펼쳤고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삐라로 한라산을 수놓았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다시 내려왔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결국 죽음이었다.

 

 

주정공장에서 태어난 아기도 있고, 주정공장에서 죽어간 사람도 있었고 주정공장에서 육지형무소로 이송된 사람도 있다.

 

 

그 시절의 그 사람들은 이제 거의 가고 없는데, 2023년 제주에 나타난 서북청년단은 또 어디서 보내진 것일까. 이승만의 망령인가.

 

 

불법적인 군사재판으로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 혹은 육지형무소로 이송.

 

 

1950년 8월에는 예비검속으로 주정공장에 수감되었던 5백명을 제주항에 수장.

 

 

정뜨르비행장 유해. 참회조차 한 적 없는 이승만기념관은 이제 곧 생긴다는데 저 슬픈 영혼들은 어디에서 쉬나.

 

 

영문도 모르고 육지형무소로 이송된 이들 역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전국 각지로 분산수용된 제주 민간인들

 

 

당시 약 2,530여명의 민간인이 제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체포 구금되고 불법적 재판을 통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수형인의 편지/고두정

 

 

 

 

국가기록원 소장 제주지방검찰청 '수형인명부'

 

 

이 '수형인 명부'가 1999년 발굴되면서 제주 4·3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불법 감금 학살되었다는 증거가 되었다.

 

 

예비검속은 또 무엇인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또한번 예비검속이란 명분으로 살육을 자행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침묵이 이어진다. 1948년의 4·3은 1954년 한라산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끝이 난 듯 보였으나 이후로도 침묵의 연좌제는 1980년대 이후로도 고통스럽게 이어진다.

 

 

그 침묵의 시간은 1978년 현기영의 '순이삼촌' 발표 이후로 제주대학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운동권 학생들이 움직이면서 비로소 깨어졌다.

 

 

그리고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사과가 이어지면서 4·3은 그 쓰라린 상처를 햇살 아래 드러내게 되었다.

 

 

남은 과제는 4·3 수형인 명예회복

 

 

무죄판결문. 2019년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결국 4·3 수형인들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이 제주 4.3사건 당시 군법회의의 불법성을 확인한 것이다.

 

 

낭푼에 담은 지실밥에 마농지뿐인 밥상이라도 그리운 사람과 마음 편하게 둘러앉아 정을 나누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법원은 법다운 판결을 내렸다.

 

 

강요배/시원始原

 

 

시민들/소원

 

 

살아남은 우리는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다만 바랄뿐이다.

 

 

주정공장 동쪽 언덕 아래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인공동굴이 있다. 4·3 당시 이곳에서도 민간인들이 학살되었다. 그들의 영혼을 추모하며 어둔 동굴을 빛으로 밝혔다.

 

 

현재 이곳 주정공장 역사관 인근에는 제주 4·3 당시 주정공장 유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당시에 전분공장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폐수처리시설로 추정되는 시설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날 그때 제주바다에서 혹은 제주들녘에서 스러져간 이들을 추모하는 시화전 '바람불 때마다 파도칠 때마다'가 이곳 주정공장 4.3역사관에서 9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계획되어 있다.

 

 

언 마음 푸소서

 

 

봉분없는 바다

 

 

우르르 바다로 숨는 별들

 

 

국가가 한 그 일

 

 

낙인

 

 

바람불 때마다

파도칠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나는 고문의 기억을 안고

그 바다의 아들은 진혼제의 사회를 본다.

 

 

아직 남은 이야기

슬픈 이야기

이승만기념관이 생긴다고 하더니

서북청년단 깃발이 또다시 제주를 찾아왔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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