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주 4·3 학살 사건 75주년.
그날의 피비린내를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 생존해 있다.
그리고 제주 4·3 미술제 30주년.
그날의 그 피비린내를 닮은 물감이 아직도 소름 끼친다.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제주 현대미술관에서는 기억의 파수
예술공간 이아에서는 경계의 호위
눈물의 기억과 흔들리는 경계 사이에서의 혼돈
고길천/붉은 구럼비
살아있는 생명체 구럼비
그래서 붉게 칠했다
구럼비야, 너는 여태 살아서 무얼 보았느냐
이명복/광란의 기억4
대통령 이승만
경무부장 조병옥
대한민국 육군대령 함병선
대한민국 육군 대령 유재홍
임옥상/4·3 레퀴엠
썩지 않고 묻혀 있는 4·3의 어머니와 아들과 딸들로 인해
오름은 여전히 잠들지 않고
제주는 여전히 화산도이다.
박야일/연막, 탄
연막에 가리워진 진실
이제 다 드러내라
오카베 마사오/활주로에 새겨진 발자국
마키노우치 해군비행장 활주로 콘크리트에 남겨진 선명한 발자국.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장들이 기억.
그 기억은 알뜨르 비행장으로 이어진다.
양미경/해바라기
빨갱이 뽈갱이 빨치산 폭도 공비 극렬분자 좌익분자 적색분자 통비분자 골수분자 불순분자 불온분자
사악한 위정자가 가난한 개인들에게 씌워본 올가미
연미/문을닫고 밥상 앞에 앉아서
국가적 주도하에 행정적으로 진행되는
4·3의 역사적 변화 앞에서
당사자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오은희/스투파_위태로운 기도
위태롭고
간절한
기도
그만큼의 공포
좌혜선/흐르고 넘치는 것#1
4·3 이후 세대 작가에게
4·3은
만지고 싶지 않은 어떤 것에 손을 댄 느낌
원치 않은 질병
양동규/우리들의 차례상
산전에서 찾은
생존의 표식
숟가락과 탄피
멩게낭 숯
그곳에서 올리는 우리들의 차례상
강동균/잃어바린 마을 -물터진골
조천읍 와흘리
1948년 11월 13일
9연대 군인들에 의해 마을주민들은 학살당하고
남은 집들은 방화 전소되어
마을은 사라졌다.
김영화/맥박
너산밧
여전히 살아있고
살아남을
제주여!
정현영/오늘에 살아있다
모슬포 물웅덩이
여전히 살아있다
침략도
학살도
덮지 못하는 것이 있다.
정정엽/대한민국 유서대필 조작사건
조작사건
책임자는 없다
정정엽/그믐-제주도4·3
그믐
여전히 묻혀 있는 제주
최소형/울지않은 카나리아
광부들은
탄광 속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데리고 다녔다.
카나리아가 울지 않으면
그것은 위험하다는 신호.
울지 않는다는 건
바로
위험경보
홍성담/아기도깨비의 죽음
제주 사려니 숲 물웅덩이.
작가는
그곳에
바닷가에서 죽은 시리아 난민의 아기를 데려다 놓았다.
땅의 수호자인 아기도깨비들이 죽어가는 4·3을 기억해냈다.
양천우/해원解冤
무등이왓 방사탑 사이로 대나무가 자란다.
해원解冤이 된 것일까.
해원解冤을 기다리는 것일까.
고혁진/미완성 풍경/구국의 기원
칼끝은 늘 정의롭다고 거짓말한다.
정용성/박진경, 송요찬, 함병선 대령
박진경대령
송요찬소령
함병선 대령
박진경은 1948년 5월 6일 조선경비대 제11연대장으로 부임하여 무장대와의 평화적인 해결을 중시하던 김익령 중령과 달리 미군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대대적인 체포 작전을 펼쳐 부임한지 6주간 6천여명에 이르는 제주도민을 체포했다. 미군정은 이를 계기로 제주도에 부임하지 한 달도 안된 그를 대령으로 특진시켰다. 1948년 6월 18일 새벽 진급 축하연을 마치고 숙소에서 잠을 자던 그는 부하가 쏜 총에 피살되었다. 이 피살 사건으로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가 총살되었다.
송요찬은 1948년 10월 17일 포고령을 발표하였다.
제2연대장 함병선은 송요찬과 마찬가지로 일본군 지원군 준위 출신이었다. 1948년 12월말 경비대 총사령부는 대전 주둔 제2연대와 제주 주둔 제9연대를 맞교대시켰다. 제2연대는 여순사건 때 전투경험을 했고 특히 제3대대는 서북청년회 출신으로만 구성되었다. 미군 비밀문서는 함병선은 신분이나 무기 소지 여부를 가리지 않고 폭도 지역에서 발견된 모든 사람을 사살하는 가혹한 작전을 폈다라고 기록했다. 이 때 북촌사건이 발생했고 봉개리 주민들이 집단 학살되었다. 1949년 3월 말 “산에서 내려와 귀순하면 과거 행적을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라는 사면 계획을 믿고 하산한 도민 중 젊은 남자들은 함병선이 주도한 불법적인 군법회의를 통해 사형, 무기형, 중형을 선고받았다.
홍진숙/ 배염나리
제주시 미리내 공원 배염나리
4·3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된 터
오석훈/ 정방-소리너머
서귀포 정방폭 주변 소남머리
폭포 소리 너머
울음 소리
울다 지친 소리
그리고 핫플레이스 관광지에서 터지는 아이폰 카메라 소리
찰칵
제주의 아름다운 절경을 간직한 관광명소들은 저마다 4·3이 스친 아픔이 베어 있다. 정방폭포와 주변 소남머리 일대도 마찬가지이다. 제2연대를 비롯한 토벌대들은 서귀포에 주둔하면서 주변에 비교적 큰 창고건물이나 관공서, 학교 등을 접수했다. 초토화 작전과 본격적인 토벌이 시작되면서 중산간 마을의 많은 양민들이 붙잡혀 왔다. 토벌대에 가세한 서북청년단의 횡포가 하늘을 찔렀다. 서귀면을 포함한 중문, 안덕, 남원, 표선면에 이르기까지 붙들려온 주민들이 창고 등에 넘쳐났다. 그들은 혹독한 취조와 고문 끝에 즉결처분자로 분류되어 명을 달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아름다운 정방폭포 소남머리 일대도 즉결처형장으로 변했다. 이곳에서 희생된 분들은 256명으로 전해진다.
이경재/절규
돌담 사이로 바라본 풍경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진 학살
동백꽃이 진다
이샛별/사월의 돌
4·3의 기억
너분숭이에 묻힌 아기무덤가의 돌들
가장 약한 존재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LOOP
너분숭이의 기억은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확장된다.
책임자 없는 사건은
1948년에서 현재까지 늘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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