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주의 사찰

중문 광명사

by 산드륵 2023. 5. 7.
728x90

 

서귀포시 중문 천제연 언덕의 광명사.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의 한 축을 담당한 방동화 스님께서 창건한 사찰로 그 의의가 무척 깊다. 그러나 먼 길 돌아 5년여 만에 찾아오니 모든 것이 다 변해 있었다.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화락당和樂堂

 

 

화락당和樂堂. 정조는 1795년 경기도 화성으로 행차하면서 '호호부실戶戶富實 인인화락人人和樂'이라 하였다. 가가호호 모두 풍요롭고 사람마다 화평하여 즐겁기를 바라던 정조의 축원이다.

 

 

일체중생一切衆生

발보리심 發菩提心

일향전념一向專念

아미타불 阿彌陀佛

덕풍화우德風華雨

무불구족無不具足

 

『무량수경』에서는 "일체중생이 보리심을 내어 오직 한마음으로 아미타불을 염하면 덕의 바람의 불고 법비가 내려 일체를 구족하지 아니함이 없다."라고 하였다.

 

 

화락和樂의 경지는 과연 어떠할까.

 

 

인因의 지地를 어디에 둘 것이냐에 따라 모든 것은 달라진다. 백성들을 사랑한 정조의 화락和樂과 『무량수경』을 인용하며 '깨달음을 통해 화락和樂하라'는 『화락당和樂堂』의 말씀이 서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광명사 전경.

광명사는 방동화스님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방동화스님은 무오법정사항일운동으로 옥고를 치룬 이후에 금강산 마하연선원에 방부를 들이는 등 제주를 떠나 있다가 마침내 다시 고향 제주로 돌아와 원만사를 창건한다. 그러나 제주 4.3으로 원만사가 소실되자 1949년 4월 8일 신도 30여명과 함께 이곳 중문으로 이동하여 광명암을 창건하였다. 광명암의 원래 자리는 현재의 광명사에서 천제연 계곡쪽으로 내려가는 곳에 위치한 천제사였다. 그러다가 방동화스님께서 1970년 원적에 들자 광명암은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고 광명사로 불리웠다. 광명사는 방진주스님께서 정법을 이어 주석하시며 1998년 대웅전, 요사채, 법당 등을 완공하고 현재의 광명사를 이루어내었다. 방진주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면서 현재는 태고종 소속 사찰로 자리잡고 있다.

 

 

1층은 극락전 2층은 대웅전

 

 

극락전의 아미타불과 좌우협시보살

 

 

늘 자등명 법등명하길 축원한다.

 

 

나무관세음보살

 

 

2층 대웅전. 1998년 완공되었다.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였고 좌우에 다시 여래상과 보살상을 봉안하였다. 왼쪽의 건칠불은 1926년 방동화스님께서 조성한 불상이다. 오른쪽의 관세음보살상은 방동화스님께서 평생을 모시고 다니던 불상이다. 1910년 일본에서 모셔왔다.

 

 

오른쪽으로부터 방동화스님의 맏상좌이신 원문상스님, 방동화스님, 방진주스님. 제주근대불교의 기억을 간직한 소중한 스승들이다.

 

 

다라니의 바람

 

 

주지스님의 요사채

 

 

염불선원으로 스님께서 수행하시는 공간.

 

 

이 마음이 바로 부처

 

 

평등전

 

 

세잎과 네잎의 평등. 차별상을 버리고 진리의 평등상으로 나아가야하는 수행자의 마음을 읽는다.

 

 

광명사에서 수보사, 그리고 다시 광명사로 이어지며 오늘에 이른 곳

 

 

이곳을 찾은 이유는 방동화스님이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잘 지내고 계신가 궁금해서였다. 일제강점기 무오법정사 항일운동의 주축으로 근대제주불교를 중흥시킨 그 시대 인물들에 대한 선학자들의 연구가 이제는 어떤 결과물로 이어지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물론 시간은 멈춰있었고 이끼는 자라고 있었다.

 

 

연보 1

 

연보 2

 

연보 3

 

연보 4

 

연보 5

 

연보 6

 

'제주의 사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귀포시 대포동 약천사  (1) 2023.05.08
중문 천제사  (1) 2023.05.07
일과 대원사  (1) 2023.05.05
하원 법화사  (0) 2023.05.05
한동 동법사  (1) 2023.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