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송 대전사
신라 문무왕 12년인 67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전통사찰이다. 이 사찰은 진성여왕 6년인 892년에 낭공선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하며, 고려 태조 2년인 919년에 눌옹대사가 창건하였다고도 전한다. 대전사는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고 임진왜란을 거치며 쇠락하였다가 조선 현종 13년인 1672년에 보광전을 중창하였다.
대전사는 한 때 소현왕후와 인수왕후의 원찰로서 사세를 확장시켜 5방 3불 3루각을 갖춘 대찰이었으나 쇠락의 길을 면치 못하여 두 개의 불당만 남은 처지가 되었다. 현재의 대전사는 1995년 이후 명부전, 신령각, 탐진당 등을 이전 신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는 이곳 대전사와 대전사의 주왕굴에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중국 당나라 때에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황하의 물을 손으로 떠 마시며, 이처럼 태산을 갈아 마셔버리리라 하고서는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모아 당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주도는 크게 패하고 도망치다가 마침내 신라 땅 석벽산으로 숨어들었다. 주도는 이곳에서 노략질을 일삼으며 숨어 지냈는데 신라에서는 갑자기 이 일대에서 노략질이 성행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궁금하게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당나라에서 주도가 신라 땅으로 숨어들었으니 그를 없애달라고 하자, 그 때에야 주도가 이곳에 숨어들었음을 알아채고,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주왕산 기슭의 사찰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했다고 한다.
수월당
『주왕산지(周王山志)』에 의하면 대전사에는 5방 3불 3루각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에 5방은 설선당·탐진당·수월당·관음전·한산전 등이고, 3불전은 보광전·극락전·명부전, 3루각은 용화루·범종각·응향각이다.
응진전
명부전
『방산이방헌선생문집(方山李邦憲先生文集)』에는 쇠락한 대전사에 두 개의 불당만 남아있다고 하였는데 그 두 개의 불당은 명부전과 보광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광전
보물 제1570호로 지정되어 있다. 1976년 보광전 중건 당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조선 현종 13년에 중창하였음이 확인되었다. 내부단청과 벽화 또한 뛰어나다고 한다.
보광사 석조 여래 삼존상
조선 숙종 11년인 1685년 조성되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6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광전의 찬란한 단청이 눈부시다.
산령각
대전사 금강탑
이 금강탑은고려말에서 조선초 사이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전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 알려져 있다.
관음전
관세음보살
소원탑
부도탑
스스로 주왕이라 칭했던 당나라 주도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혁명군이었을까 반란군이었을까. 궁금함을 지니고 찾아온 대전사. 눈길은 이미 대전사를 벗어나 주왕이 숨어살았다는 주왕굴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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