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산 136-6번지 궷물오름. 이 오름은 "쉐 올리래, 쉐 보래, 쉐 내리래" 다니던 목동들의 기억이 남아있는 곳이다.
제주의 동부지역 목동들은 동부지역의 넓은 초지로 인해 한라산 백록담까지 드나들 필요가 없었으나, 이곳 서부지역 애월읍 광령리, 유수암리, 납읍리, 상가리, 장전리 등의 목동들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드넓은 초지를 찾아 해발 1400m 고지 이상에서 백록담까지 오르내려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한라산의 보호를 이유로 한라산 방목이 금지되면서 제주의 목축문화는 소멸 내지 변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궷물오름 안내문.
1937년 일제강점기에 장전공동목장조합원들이 모래와 자갈을 바닷가에서 등짐으로 운반하여 궷물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가두어 목축에 필요한 급수장을 조성하여 주로 암소의 급수장으로 이용하였고, 숫소의 급수장은 이곳에서 남서쪽 궷물오름 중턱에 위치한 속칭 절된밭에 조성한 연못을 이용하였으며, 그 동쪽에는 당시에 식수로 사용했던 샘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절된밭’을 찾아보고자 했는데 길의 인연은 ‘쉐멩질’ 즉 ‘소의 명절’이라고 하는 ‘백중’ 기도터로 향한다.
백중은 불교 5대 명절 중의 하나로서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백중일에는 돌아가신 부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우란분회가 성대히 열렸다. 지금도 사찰에서는 백중일인 음력 7월 15일에 백중기도를 행한다.
궷물오름의 백중제터.
제주의 백중은 불교에서의 백중과 달리 좀더 다양한 의미가 있다. 제주 민속에서는 백중날을 기준으로 바닷물이 여름 물길에서 가을 물길로 바뀐다고 하며, 제주무속본풀이에서는 자청비가 옥황상제에게서 오곡의 씨앗을 받아 세상으로 내려온 날이라고도 하고, 우마를 돌보는 사람들은 음력 7월 14일 밤 자정을 기해 음력으로 15일에 접어들면 백중이라는 목동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의 백중과 목축문화 속의 백중, 그리고 민속에서의 백중은 모두 음력 7월 15일을 전후하여 행해지는데 어디에서 그 의미가 습합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이날에는 모두 물맞이를 하면서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있다.
옛날 차귀벵듸에는 백중이는 목동이 살았다. 하루느 그가 바닷가에서 마소를 먹이고 잇는데 하늘에서 옥황상제가 내려왔다. 웬일인가 싶어 가만히 보고 있자니까, 옥황상제는 바다를 향하여 “거북아!” 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후 아주 큰 거북이가 떠 올랐고, 백중은 한층 더 호기심이 생기어, 가까이 숨어서 엿듣기로 하였다. “거북아, 오늘밤에 석 자 다섯 치의 비를 내리게 하고, 폭우 대작하게 하라.” 이 말을 남기고 옥황상제는 하늘로 올라갔다. 백중이 생각하여 보니 큰일인 것이다. 석 자 다섯 치의 비와 폭풍이 내리치면 홍수가 날 것은 물론이고, 가축과 곡식이 성할 리 없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는 언덕에 올라가 옥황상제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거북을 불러냈다. “아까는 깜빡 잊어서 말을 잘못했다. 비는 다섯 치만 내리게 하고, 바람은 불지 않게 하라.” 거북은 알았다는 듯이 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저녁에 비는 백중의 말대로 내리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한편 옥황상제가 하늘에서 굽어보니 자기의 명대로 되지 않았다. 이에 크게 노한 옥황상제는 차사에게 백중을 잡아들이도록 하였다. 백중으로서도 이러한 벌을 예기치 못했던 바가 아니라 그는 옥황상제의 벌을 받느니 스스로 죽는 것이 낫다 생각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러한 백중의 지혜와 용기 때문에 그 해는 대풍작이었다. 농민들은 한결같이 백중의 은혜를 감사히 여겨 해마다 그가 죽은 날이면 제사를 지내어 그의 혼을 위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날 (백중이 죽은 7월 14일)은 ‘백중날’이라 하여 물맞이와 해수욕을 하는 풍속이 있는데, 이 날에 물맞이나 해수욕을 하면 만병에 약이 된다는 말이 제주에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고, 또 이날에 마늘 따위를 심으면 잘 되어서 백 가지로 벌어진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백중제’는 한 목동인 백중의 혼을 위로하기로 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오늘날 이 고장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농민의 뺄 수 없는 귀중한 제사가 되었다.
궷물오름의 샘물
한라산을 드나들던 제주의 목동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궤와 물과 초지였다.
궷물오름에서 궤는 아직 보지 못했으나 물은 여전히 풍부하다.
백중날에는 마을공동목장이나 목장이 있는 오름의 정상에서 떡과 밥 그리고 술 등의 제물을 진설하고 제를 지냈다고 한다. 궷물오름 안내문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 궷물오름의 백중제터는 궷물오름 정상이 아니라 샘물이 솟는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이 샘물의 길이 그리고 백중제터가 곧 ‘절된밭’으로 가는 입구일 것이라고 나는 판단하고 있다.
궷물오름으로 오른다.
높이 597.2m, 둘레 1,388m의 궷물오름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풍경
조근노꼬메, 큰노꼬메
가을
궷물오름을 오를 때는 백중제터쪽에서 정상을 거쳐 테우리막사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 훨씬 편하다. 거꾸로 방향을 잡으면 급경사 때문에 애 좀 먹어야 한다.
테우리막사
우막집이라고도 한다.
백중제를 지낼 때 비가 오면 우막집을 이용했다고 안내되어 있다.
목동의 길을 따라 걸어본 궷물오름. ‘절된밭’을 찾아 제대로 걸어봐야 할 인연이 다가오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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