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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대포항의 존자물

by 산드륵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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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대포포구, 옛이름은 '큰개'이다. 이 포구에서 해저에 묻혀있던 3개의 초석이 인근 법화사 금당지의 초석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고려시대 비보사찰 법화사의 중건을 위한 여러 물자들이 이 포구를 통해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포포구는 법화사와의 연관성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용출하던 '존장물'과 '중질' 등과 관련하여, 상원인 영실 존자암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대포포구의 '존장물'은 해안도로가 정비되면서 사라졌다. 다만 콘크리트 구조물 맨끝에 구멍을 내어 '존장물'이 바다로 흐르도록 설계해 놓았다. 안내문 하나 없이 사라졌기에 그 물맛을 기억하는 이들만 아는 이야기이다.

 

 

대포포구에서 발견된 주춧돌. 이 주춧돌은 법화사 금당지 주춧돌과 유사한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그 재질의 제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려 법화사 중건 당시 대포포구에서 하역하다가 유실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각형 주춧돌 각부에 초두를 둥글게 만들어 윤곽을 주고, 다시 그 안에 동심원을 음각하였다. 전체 직경 90㎝, 두께 45㎝이며, 초두주좌원의 직경은 46㎝이다.

 

 

『서귀포 시정지(1998년, 김평윤』에 대포포구 주초석에 대한 기고문이 실려 있다.

 

“대포해안의 주초석 : 1990년 5월, 필자는 대포해안에 있는 법화사지에서 출토된 똑같은 크기, 모양, 석질의 주초석을 발견하였다.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광복 후 대포포구의 선박 계류장을 개축할 때 축대 옆 해저 모래밑에서 3개의 초석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마을 주민 고영진씨가 가져가서 정원석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하나는 마을 할머니가 맷돌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떤 청년이 와서 가져가 버렸다고 찾아내라고 야단을 쳤다 한다. 필자가 발견한 초석 하나도 누군가 가져갔다가 소유하기가 두려워 다시 바다로 돌려 놓은 것이다.”

 

 

대포포구에서 중질을 지나 영실 존자암으로 가는 길목이 이곳일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는 곳이다.

 

 

좌초된 기억이 파편처럼 흩어진 대포포구에서 누군가는 선정에 든다. 제주불교 성지순례길 선정의 길 34km 중에서 이곳 대포포구는 '베릿네 별빛따라 길'이라고 한다. 이름도 아름답다. '베릿내'란 별이 내리는 성천포구를 이름하는 것인데 '한라'가 은하수를 끌어당겨 이곳 중문면 대포동 성천포구 베릿내 쪽으로 흐르게 했나보다. 그 별이 내린 길이 '중질'로 표현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제주불교 성지순례길 선정의길 안내 및 궁금사항은 제주불교 청년회로 문의 바랍니다. "라고 되어 있는데 2016년의 그 연락처가 아직도 유효한지는 모르겠다. '베릿네 별빛따라 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법화사(고려시대 제주 최고의 사찰, 문화재)⇒약천사(전통사찰, 혜인스님의 법이 살아 숨쉬는 사찰)⇒대포 본향당(당 올레길이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당)⇒중질(고려와 조선시대 스님들이 많이 다니던 길), 절터왓(고려시대 사찰터)⇒주춧돌(고려시대 사찰 주춧돌)⇒올래8코스⇒대포연대(고려와 조선시대 해안가 방어유적)⇒주상절리(자연의 빚은 예술품)⇒베릿네 오름(별빛이 내리는 아름다운 오름⇒천제사(선정의 길 종점)

 

 

대포항 도대불. 현무암과 시멘트가 만나 소박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1942년경 만들어졌으며 2012년에 제주도 등록문화재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강풍, 한파, 폭설경보가 한꺼번에 내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기에 좋은 나날이다. 늦기 전에 두레박이라도 던져 짠짠해진 존장물 한 모금 길어먹고 중질로 나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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