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도순동 산 1번지 법정이 오름의 무오법정사항일운동 발상지를 찾았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은 1918년 10월 7일 도순리 법정사 승려들이 보천교 등의 종교 지도자들의 협조를 끌어내어 일본인 축출과 국권회복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제주도내 최대 규모 항일운동이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 당시의 1918년 법정사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 제 61-1로 지정된 폐사지는 유족의 증언에 의해 밝혀진 곳이다. 일부 학자들은 1980년대 전후에 활동을 시작한 동일한 이름의 법정사 자리에 1918년 법정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조선오만분지일지형도에 의하면 이 일대에 약 4군데의 건물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여러 전각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법정사는 1911년 안봉려관스님과 김석윤 스님 등에 의해 산남 대표 사찰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이미 그 이전에 이곳에는 사찰이 들어서 있었다. 그 사찰의 이름은 ‘법돌암’이다.
1918년 매일신보에 ‘법돌암’이 등장한다.
이 길은 어떤 길인가.
숲의 제단터
계곡의 제단터
하원下院 법화사에서 중원中院 법돌암을 거쳐 한라산 영실의 상원上院인 존자암으로 가는 길이 이 길이고, 이 길이 존자의 길이고, 이 길이 중들이 다니던 길이라 하여 ‘중질’이다. 그 길에 법돌암이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전소되어 폐사되고 출입금지 구역이 되면서 무속인들만 드나들어 제단터가 여기저기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 발상지 안내문. 오타가 있는데 언제쯤 수정할 것인지 궁금하다.
10여년 전만 해도 맑은 물이 고여있었으나 이제는 물길마저 끊긴 샘물터
유족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에 있었던 법당은 우진각 지붕의 초당 형태였다고 한다.
붉게 탄 솥과 항아리 파편들, 몇 개의 주춧돌. 1918년 10월의 기억은 그렇게 남았다.
10월이 가기 전에 다시 이 길 위에 섰다. 1918년 10월에 법정사 주역들이 걸었던 항쟁의 옛길을 따라간다.
1918년 10월 7일 새벽, 법정사에서 출정식을 겸한 예불을 마치고 강창규스님을 선봉대장으로 한 34명의 선봉대들은 큰 깃발 6개를 앞세우고, 화승총 3정과, 곤봉 등을 들고 이 길을 내려갔다. 그 길은 법정사에서 도순리 상동, 영남리, 서호리, 호근리, 강정리, 도순리 대천, 하원리, 중문리로 이어진다.
법정사에서 도순리 상동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여전히 인적이 있다.
나무들만 보이는 듯 하나 희미하게 옛길이 남아있다.
그 길 끝에서 만나는 풍경. 고근산이 보인다.
느린 걸음으로 20여분이면 내려오는 이 길을 그들을 더 빠른 걸음으로 내달려 영남리로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서호리, 호근리, 강정리, 도순리, 하원리, 중문리로 달렸을 것이다. 이 옛길을 복원할만도 하나 예산 부족에 의지 부족으로 기억마저 점점 희미해져 이제는 거의 사라진 길이 되었다.
누군가 걸어야 희미하면 희미한대로 이 길이 남을 것 같아서 가을이 깊어가는 옛길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