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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장다리꽃

by 산드륵 2024.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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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다리꽃

 

 

3월의 유채꽃이 떠난 뒤에는

4월의 장다리꽃이 제주를 뒤덮는다.

소복을 입은 소녀의 눈시울같은 장다리꽃이 제주를 뒤덮으면

제주4.3도 꽃그늘 아래 묻힌다.

 

 

강진에 유배왔던 정약용이 어느날 울타리 너머 장다리꽃을 보았다. 장다리꽃에서 쉬어가는 나비를 보았다. 그렇게 한식경이 지났다. 방으로 돌아와 정약용은 붓을 든다.

 

賦得菜花蛺蝶 장다리꽃의 나비를 시제로 삼아 읊다

 

舍下三畦菜 疎籬傍樹

且看花欲靜 誰起蝶先

病翅猶全凍 芳心獨未

春風大有信 每與爾同

 

사랑채 아래 채소밭은 세 두둑

나무 곁에 성근 울타리가 열려있다.

또한 바라보니 꽃은 가만히 있으려 하는데

누가 부추겼나, 나비가 먼저 오네.

병든 날개 전부 얼었지만

애틋한 마음은 식지 않았구나.

봄바람은 큰 신의가 있으니

언제나 너희와 함께 돌아오는구나.

 

 

꽃과 나비가 한가득

 

 

그 순간 봄인가 하였는데

이미 봄은 사라지고 없다

 

 

피자마자 지고마는 꽃잎

 

 

봄날의 향기

 

 

아마도

꽃을 좋아하는 까닭은

압축된 그 찰나의 운명 앞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되돌아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장다리꽃/도종환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올때

장다리꽃은 가장 짙다

남녘으로 떠돌며

사무치게 사람들이 그리울 때면

징다리꽃 껴안았다

벼룻길로 바람은 질러오고

고개 이쪽에 몇개의 큰 이별

아리랑 아리랑 아랄이요 노래를 남기고

손사래치던 손사래치던 장다리꽃

비를 맞으며 장다리꽃 고개를 넘다

비를 맞으며 손바닥에 시를 적었다

남은 세월은 젖으며 살아도

이 길의 끝까지 가리라고 적었다

등줄기를 찌르는 고드래 같은 빗줄기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올때

장다리 꽃은 가장 짙다.

 

 

장다리꽃.

긴 다리 위에 꽃을 피운다.

 

 

장다리꽃이 살아가는 방법

 

 

무꽃이 살아가는 방법

 

 

배추꽃이 살아가는 방법

 

 

삶은 늘 그렇게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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