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佛家思議

금강계단-달성 용연사

산드륵 2025. 8. 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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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비슬산 용연사. 자운문慈雲門을 거쳐 들어선 용연龍淵에는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다.

 

 

비슬산 용연사는 영축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오대산 월정사, 사자산 법흥사, 그리고 설악산 봉정암, 금강산 건봉사, 선산 도리사와 더불어 8대 적멸보궁지로 불린다. 임진왜란 당시에 사명대사의 제자인 청진스님이 통도사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용연사를 거쳐 금강산에 모셨다가, 전란이 평정되어 다시 돌아오던 중에 사리 1과를 이곳 용연사에 봉안했다고 한다.

 

 

비슬산 용연사 적멸보궁 가는 길

 

 

금강계단. 금강계단은 금강석처럼 단단한 진리의 수계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금강계단에는 적멸보궁이라는 전각이 세워지며, 그 뒤로 진신사리탑이 있어서 예배의 대상이 된다. 인도의 나란타사에도 이 금강계단이 있었다고 한다.

 

 

적멸보궁

 

 

금강계단 안의 부처님 진신사리탑. 생멸을 떠나 늘 현현顯現하는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상징하는 진리의 탑이다.

 

 

용연사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지게 된 것은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스님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피해 이곳 용연사로 진신사리를 모시면서부터이다. 당시에 비슬산 용연사는 승군들의 주둔지였다. 이에 승군들은 이곳 용연사가 통도사보다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통도사 금강계단의 진신사리 2과를 이곳으로 모셔왔으나 전란이 더욱 다급해짐에 따라 또다시 금강산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후 전쟁이 평정됨에 따라 금강산에 봉안되었던 진신사리를 다시 모셔오게 되었는데, 그때 진신사리가 가셨던 길을 따라 용연사와 통도사에 각1과씩 봉안하게 되었다.

 

 

용연사 금강계단은 통도사 금강계단 형식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금산사 방등계단과 더불어 대표적인 계단戒壇으로 알려졌다. 석조 난간을 두른 구역 안에 종 모양의 진신사리탑을 올렸다. 탑신 꼭대기에는 보주가 조각되어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올려져 있다. 1층 기단에는 사천왕상이 진신사리탑을 호위하고 있고, 2층 기단에는 팔부신상八部神像이 새겨져 있다.

 

 

용연사 금강계단은 1613년 조선 광해군 5년에 조성되었고, 1934년에 중수 불사가 행해졌다. 중수 불사 당시에는 사리탑 주위에 석주를 세우기도 하였다.

 

 

용연사 적멸보궁에 참배하고 용연사 천왕문으로 들어선다.

 

 

「용연사 사적」에 의하면 용연사는914년 신라 신덕왕 3년에 창건되었다. 912년 신라 신덕왕 1년에 보양국사寶讓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다. 보양 국사는 고려 태조 왕건을 지원하던 스님으로 폐사가 된 작갑사鵲岬寺를 중건하여 운문사雲門寺를 창건하기도 했다. 「용연사 사적」에 의하면 보양 선사가 중국에서 불법을 깨우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다의 용이 용궁에서 대접하고 아들 이목璃目에게 모시고 가도록 하였는데, 보양 선사는 이목으로 하여금 가뭄에 비를 내리게 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용연사라는 사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용연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의 거점지였으나 왜군의 약탈과 방화로 소실되었고, 이후 1603년 선조 36년에 사명대사의 명령에 의해 재건되었다. 1650년 효종 1년에도 별똥이 떨어져 용연사 종각만 남기고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고,그 이후로 여러차례 중건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연사 극락전. 용연사 극락전은 1728년 완공된 전각이다. 화강석으로 쌓은 석단 위에 정면 3칸 옆면 3칸 규모의 전각을 세웠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공포는 다포양식으로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용연사 삼층석탑.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고, 지붕돌의 조각양식이 변화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용연사 극락전과 삼층석탑은 대구광역시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용연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1655년에 조성되었고 1762년 중수개금하였다. 이 용연사 삼존불은 조각승 도우道祐의 작품이다. 당당하면서도 풍요로운 느낌을 주고 있는데, 도우 스님의 불상은 "부드럽고 넉넉한 상호, 당당하고 장대한 신체비례, 강직한 선묘, 무릎 앞의 넓은 주름을 중심으로 좌우로 세밀하게 새긴 주름" 등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극락전의 용들. 보양국사는 용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비를 내려 농사를 돕게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용연사 인근 이 마을 청년 일곱 명이 용연지 근처에서 전투 중에 모두 목숨을 잃었고 용연지는 붉게 물들었는데 그 청년들이 일곱 용이 되었다고도 전해진다. 일곱 용 중에서 네 마리는 승천하고 세 마리는 서로 싸우다가 죽었는데 용연사에서는 매해 단오경에 용왕제를 지내어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불단 뒤쪽 벽화. 유려한 옷주름이 압권이다.

 

 

영산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하는 장면을 표현한 영산회상도를 모셔 놓은 전각이다. 용연사 영산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봉안하고 좌우에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하였으며, 좌우로 16나한을 모셨다.

 

 

삼성각. 재물, 수명, 복을 관장하는 산신, 칠성, 독성 등 삼성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이다.

 

 

지장전.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는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 입멸 이후부터 미륵부처님이 오실때까지 중생들을 대자비로 교화하고 수호해주신다.

 

탐진치 삼독에서 벗어나 고요하기를, 그것이 곧 적멸임을 알려주는 보살들이 머무는 곳. 인연따라 잠시 용연龍淵에 들어갔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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