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佛家思議

달성 대견사

산드륵 2025. 8. 2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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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유가면 비슬산 대견사로 가는 길이 초록햇살에 물들어 있다. 대견사는 비슬산 대견사 참꽃이 산야를 붉게 덮어 꽃공양하는 부처님오신날 즈음이 가장 찬란하지만 8월에도 여전히 그 신선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2014년 3월에 중창 불사를 끝내고 전국 3200여곳의 폐사지 중에서 제1호 중창 사찰로 기록된 비슬산 대견사.

 

 

비슬산 대견사는 2014년 3월에 복원된 이후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접근하게 되어있다. 비슬산자연휴양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타면 대견사까지 이동할 수 있다. 계절마다 버스의 배차 간격이 다르다.

 

 

화요일에는 셔틀버스가 운행되지 않는다. 비슬산자연휴양림을 통과하도록 도로가 설계되어 있어서 개인 차량은 이동에 불편함이 있고, 걸어서 산정까지 가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 화요일에 대견사를 참배하려면 시간 안배를 잘 해야 한다.

 

 

성인 요금은 5천원, 어린이는 3천원이다. 내려올 때는 산정에서 다시 매표해야 한다.

 

 

대견사 부처바위

 

 

비슬산대견사중창비.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 창건된 사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현풍현 불우조에는 " 비슬산 남쪽 모퉁이에 있다. 신라 헌덕왕이 세운 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사찰의 최초 사명은 '보당암寶幢庵'으로, 『동문선』에 실린 이첨의 '보당암중창법화삼매참소'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보당암은 고려 일연 스님께서 22세 때 승과에 장원급제한 후 초임지로 주석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조선왕조실록』 태종 16년에 "경상도 현풍현 대견사의 관음상이 땀을 흘리다."라는 기록을 통해 이 사찰이 어느 시기에 대견사로 사명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대견사는 임진왜란 때 전소된 후에 광해군과 인조대에 중창되어 한때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1871년 편찬된 '현풍현읍지'에 의하면 "대견사는 비슬산 아래 있는데 지금은 폐허이다. 신라 헌덕왕이 창건한 것으로 9층 석탑이 있다. 만력 임진년(1592년)에 절이 기울고 무너졌다. 상량문 1책을 얻었는데 산세가 대마도를 끌어당기는 형세로 이 절을 창건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 영친왕 즉위 축원을 위해 1900년 중수되었던 대견사는 1908년 영친왕이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나며 몰락하기 시작했고 1917년 6월 23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되었다. 그러다가 2014년에 비로소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중건된 것이다.

 

 

해발1000m

그리하여 하늘 아래 北봉정 南대견

 

 

대마도의 기를 끌어당겨 대견사, 당나라 황제가 보아서 대견사 등등 이런저런 우스개소리도 전해져 내려오는 대견사. 이 사찰의 형세는 태산교악泰山喬嶽이라 불리는 이 지역 사람들의 배포를 닮았는데 이런 배포는 어느 문중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견보궁 大見寶宮

 

 

대견보궁 안에는 아라한, 창밖에는 진신사리탑

 

 

대견사 진신사리탑에는 스리랑카 쿠루쿠데 사원에서 기증받은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

 

 

배례석

 

 

응공應供

 

 

마땅히 공경하고 공양받을만한 분에게 배례

 

 

대견사 산신각

 

 

대견사 관음전

 

 

해발 1084m 비슬산의 해발 1000m 기슭에 자리한 대견사. 하늘 아래 마련된 이곳 800여평의 넓은 너럭바위 틈에서는 샘물이 솟고 키 큰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었기에 절벽에 축대를 쌓아 터를 마련하고 절을 지었다. 통일신라 때의 일이다. 하늘 아래 이곳에서 수행하던 그들은 유가승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도 1227년 승과에 합격하여 처음으로 부임한 곳이 이곳이었는데, 『삼국유사』의 토대는 이곳에서 시작되었고 운문사에서 완성되었다고 일컬어질 만큼 이곳은 일연 스님의 사상적 바탕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증거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스님들은 대부분 밀교수행자들인데 그것은 이곳 대견사가 유가밀교승들의 수행지였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비슬산의 대견사와 일연 스님, 그리고 인근의 유가사 등과 연계하여 고찰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대견사지 마애불. 암벽에 새겨진 둥근 고리는 인체 내부의 차크라를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일종의 ‘유가심인도瑜伽心印圖’인 것이다. 안내문의 내용을 곰곰히 읽어본다.

 

대견사 마애불은 대견사터와 접해 있는 암굴의 남쪽 입구 우측 바위 위에 음각되어 있다. 그 문양을 살펴보면 하부에는 연화대좌를 놓고원형의 아래로는 고사리문양을 대칭되게 새겨놓아서 화염문에 휩싸인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이러한 문양은 연꽃 좌대 위에서 부처가 선정에 드는 모습을 수행의 다섯 단계로 그려낸 것으로 남원 승련사 뒷산에서 발견된 밀교문양인 유가심인과 거의 동일하다. 승련사의 유가심인은 그 옆에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져 있는 반면 이곳의 암각은 하단부가 인위적으로 훼손되어 유실되었는데 유실된 부분에 '옴마니반메훔'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문양이 새겨진 바위 상면에도 정을 박을 흔적이 남아있는데 문양을 절취하기 위해 시도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정통 밀교수행법이 전래되었음을 말해주는 유가심인은 극락 만다라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깨달음의 최고의 순간을 공空으로 표현하고 그 위쪽은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등 우주의 이치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밀교 문양의 존재는 주변의 유가면, 유가사 등의 지명과 관련지어 볼 때, 비슬산 일대의 유교와의 연관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마애불이 새겨진 수행굴. 요가 수행을 하던 수행자들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견사 삼층석탑

 

 

기록에 의하면 대견사 석탑은 구층탑이었다고 하나 폐사지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88년에 복원하며 3층탑이 되었다. 절벽의 바위를 바닥돌로 삼고 그 위에 2층 기단과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신라에는 황룡사 구층목탑이 있어서 주변의 9개 국가로부터 국가의 안위를 지키려는 소망을 담았다. 1층의 왜국, 2층의 중화, 3층의 오월, 4층의 탁라, 5층의 응유, 6층의 말갈, 7층의 거란, 8층의 여진, 9층의 예맥 등이다. 이곳의 구층석탑은 어떤 소망을 담고 세워졌었을까.

 

 

대견사 참꽃군락지. 이곳에 붉은 참꽃이 가득 피어난 광경은 죽기 전에 꼭 한번은 마주해야할 풍경이다.

 

 

비슬산 산정의 유가승들처럼 차크라를 열면 세상은 늘 시원하다.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다. 그 서늘함의 끝은 고요하다. 그리고 고요함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곧 '대견大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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