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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장가 임제는 그의 『남명소승』에 두타사라는 고대사찰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578년 한라산 등반에 나선 임제는 제주성에서 도근천을 지나 영실 존자암에 올라 며칠을 머물며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오백나한의 땅 영곡을 거쳐 백록담에 오른 후에 남벽을 타고 내려와 두타사에서 하룻밤을 자고 효돈천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한라산 중턱 선돌 옆 언물내에서 흘러내리는 큰내는 고살리 길을 거쳐 영천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이 길은 직사 점마소 관리들이 영천관까지 왕래하던 길이다.

 

 

임제는 두타사가 두 계곡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서 쌍계사라고도 불린다고 기록하여 놓았는데, 임제의 기록에 의거하여 두타사로 추정되는 곳은 몇 군데가 지목되고 있다. 『제주의 폐사지』에서는 선돌선원, 즉 지금의 선돌사가 두타사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으며, 선돌계곡과 백록계곡 사이의 효명사 인근을 두타사라고 추정하는 이도 있다. 또한 근대시기 1924에 고대사찰 두타사의 명맥을 이은 백양사 상효리 제주포교소의 위치가 두타사라고도 추정하기도 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516로 771번길 80-27 지경인 이곳에는 쌍계사지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두타사의 흔적을 찾아 먼저 상효동 선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선돌선원을 찾았다. 천년 금강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선돌선원은 창건주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후 지금은 해암 스님께서 머물고 계신데, 2024년 사찰명을 선돌사로 바꾸셨다.

 

 

이끼가 그리는 마애불

 

 

초록의 정토세계 선돌사

 

 

연지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화전민들이 들어와 살던 산 깊고 그늘 넓은 곳이다.

 

 

물이 좋은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어디서나 풍부하게 쏟아져 내리는 선돌사 샘물의 원천은 선돌 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선돌지경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초창기에는 움막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소박하나마 정갈한 인법당 양식을 띠고 있다. 창건주 성화스님께서 수행하던 곳이다.

 

 

법당에는 눈을 살포시 아내로 내리고 선정에 들어있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셨다.

 

 

서경보 스님의 존영도 함께 모셔져 있다.

 

 

선돌의 종소리. 궁금하다.

 

 

선돌 가까이 다가가면 장비가 지키는 무문관

 

 

이곳에서는 주춧돌과 축대 등이 발견된다. 『제주의 폐사지』에서도 이곳의 주춧돌을 조사한 적이 있지만, 정확한 법당의 규모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오래된 축대 위에는 약사여래불을 주불로 한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무문관의 송자관세음보살

 

 

'송자送子' 관세음보살은 자식이 귀한 이에게 자식을 보내주는 자비의 관세음이다. 창건주 스님께서 모시고 있던 관세음보살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양식을 찾아본 적이 없다.

 

 

산신단

 

 

산신 할아버지는 인자하시고 호랑이는 무척 순해 보인다.

 

 

시무외인을 한 부처님. 시무외인은 모든 두려움을 여의게 해 준다는 수인이다.

 

 

창건주 백간 스님 존영

 

 

80세에 찍은 존영이다.

 

 

초록의 선원

 

 

선돌 아래 좌선대

 

 

선돌의 수승한 기운이 맺힌 이곳은 스님께서 좌복을 펼치고 참선삼매에 머무는 곳이다.

 

 

망상을 그만 멈추어라

깨어서 보라

본다고 하는 스스로에게도 속지말라

 

 

선돌에서 상사화가 피었다

 

 

고요한 세상, 그곳이 진리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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