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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존자암

 

 

한 사람이 길을 걸었다.

그 길은 구비진 산과 들과 강을 너머 시타림에서 멈췄다.

그곳은 장작 살 돈이 없어서 화장조차 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 시체를 버리기 위해 찾는 곳이었으나 그가 들어서자 시체를 버리던 숲은 수행자의 숲이 되었다.

 

그 숲에서 그는 생로병사의 고해에서 벗어나는 진리의 길을 찾고자 극단을 넘나드는 고행에 접어들었다.

숲에서의 고행이 6년도 지난 어느 날, 그 사람은 마을 여인이 건넨 유미죽 공양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행으로 무너진 몸의 기력을 회복한 후에 그늘이 좋은 핍팔라나무 아래로 갔다.

길상초를 깔고 앉았다.

달빛이 밝았다.

달을 가리던 어둠의 그림자는 없었다.

 

불이不二였다.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이 동시同時인 진리의 달이 우주를 환하게 비추었다.

달빛 아래 그 사람은 고타마 붓다라고 했다.

 

 

'있다'와 '없다'에 매달리는 '결정적' 사고가 아닌 '인연가합因緣假合'의 진리

 

 

중도와 연기緣起

그것이

붓다에게로 가는 길

 

 

부처님 말씀이 잡아함경에 있다.

 

‘나’라는 존재는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이 세상과 우주의 삼라만상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바른 견해로 본다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있다’거나, ‘없다’고 할 수 없다.

‘있다’고 하면 있음에 의지하고, 집착하게 된다.

‘없다’고 하면 없음에 의지하고 집착하게 된다.

 

 

중도적으로 본다는 것은 ‘있다’거나, ‘없다’라고 결정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기적으로 보는 것이다.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가합因緣假合으로 인해 있다는 것이다.

저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없다.

모든 것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에 의해 존재한다.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도 멸한다’는 연기緣起에 의해 소멸된다.

그러니 인연 따라 모인 인연가합因緣假合이라고 한다.

 

 

문에 이르렀다

 

 

인연 따라 모인 것은 실체가 아니다.

나와 세상은 독자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있으니 세상이 있고, 세상이 있으니 내가 있을 뿐, 나도 세상도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흐르는 것이다.

인연가합이다.

 

나와 세상은 다만 무아無我이며 비실체로써 인연 따라 잠시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있다고 해도 맞지 않고 없다고 해도 맞지 않아, 중도로써 설할 뿐이다.

 

연기緣起는 곧 중도다.

 

 

존자암에 이르렀다

 

 

라즈기르의 영축산 여래향실에서 연꽃을 들어 보이던 고타마 붓다의 정법이 아라한들을 통해 탐라에 이르렀다.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에 의하면, 발타라존자가 900명의 아라한과 함께 탐몰라주耽沒羅洲에 거주하면서 정법을 펼치고 중생을 수호한다고 하였는데, 그 아라한의 여래향실이 바로 한라의 영실이다. 이 『법주기』는 AD 344년에 스리랑카의 대아라한인 난제밀다라가 정법을 수호하는 16명의 아라한들에 대해서 설법한 것인데, 난제밀다라가 생존했던 이 시기는 탐라 개국 시기로 추정되는 AD 300∼400년과 일치한다. 발타라존자와 아라한들은 영실존자암으로 들어와 머물렀고, 그 영실 존자암이 무너지면서 이곳 불래오름 존자암으로 이건하였다.

 

 

조선조 홍유손은 「존자암개구유인문尊者庵改構侑因文」을 통해 영실존자암은 탐라의 시조인 고량부 삼성三姓이 처음 일어날 때에 창건되어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이 정립된 후에까지 오랫동안 전해져왔고,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비보소裨補所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고 기록하였다.

 

 

1500년경까지는 국가에서 하사받은 논에서 나는 경비로 제주목사가 국성재를 행하던 존자암

 

 

대웅보전

 

 

석가모니불

 

 

존자암 목탑지

 

 

1651년 조선 효종 2년에 이경억(1620~1673)은 제주도에 안핵어사로 왔다가 시 몇 편을 남겼는데, 『탐라지』에 존자암을 묘사한 시가 있다.

 

존자암은 이름난 사찰이라더니

황량하게도 절반은 오래전에 무너졌구나

천년 세월 외로운 탑만 그대로 서 있고

방 한 칸에 서까래만 몇 개 남아있을 뿐

해객海客이 지나는 일조차 적고

만승蠻僧의 예법도 드물어져 가는데

가을 밤하늘 남극성을 바라보니

속세의 온갖 시름은 이미 사라져 없었네

 

尊者知名寺

荒凉半舊墟

千年孤塔在

一室數椽餘

海客經過少

蠻僧禮法踈

秋霄望南極

塵慮已全除

 

 

존자암 세존사리탑

 

『증보탐라지(일본천리대소장본, 영조 년간)』는 제주목 불우佛宇 조에서, “불상 1구와 함께 섬돌과 기와조각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 옆에 석옹石瓮이 있는데 뚜껑을 흔들고 움직여 열어보고자 해도 열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 옆에서 시끄럽게 하면 조각구름이 항아리 틈에서 일어나 잠깐 사이에 무수한 산봉우리를 모두 뒤덮고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리게 하는데 현縣 사람들이 유람객에 의한 폐해가 고통스러워 연못 속에 밀어 넣었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아라한들의 길에서 만나는 한라산 존자암

이 길에서 만난 한라는 늘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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