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봉 스님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제주 4.3 사건 당시 쏘아죽이고 태워죽이고 굶겨죽이던 그 광란의 피바람 속에서1948년 11월 군경토벌대에 의해 무참히 총살당한 이성봉 스님! 총을 얼마나 쏘아댔는지 시신을 염할 수가 없어서 방석의 솜을 뜯어내어 총구멍을 모두 막은 후에야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는 이성봉스님! 그 스님의 흔적을 찾아 하도리 금붕사로 떠났습니다.
그 곳엔 스님의 시신에 엉겨붙었을 핏자욱처럼 바짝 말라버린 연못만이 맨 땅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이성봉 스님의 이야기는 이 초라한 비석에 새겨진 것이 전부인 듯합니다. 비석마저도 제자리에서 뜯겨나와 후원 한쪽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1926년 이성봉 스님에 의해 창건된 이 금붕사에서는 1932년 승려교육, 1936년 법화대산림 등을 개최하면서 일제에 의해 왜곡된 불교를 바르게 세우고자 하는 노력이 일어났었습니다.
당시의 유물로 유일하게 현존하는 저 오백나한도처럼 이 곳 금붕사의 그러한 노력은 제주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 신도들에게도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주 4.3 당시 지나가던 목동을 숨겨주었다는 죄목으로 무참히 총살당하고만 이성봉 스님! 화약 냄새 자욱했을 당시의 사연을 저 키 큰 소나무는 기억하고 있을런지! 권력의 욕망 앞에서 고꾸라진 스님의 절망은 단지 스님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제주 백성 모두의 것이었기에 아마도 4.3으로 가는 길은 늘 발이 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성봉 스님이 총살당할 당시 금붕사 요사채는 불태워지고 법당은 반만 타다 남았는데 이를 1950년과 1978년에 복원하는 작업이 이뤄집니다. 말라버린 연못 바로 위로는 옛 종각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놓여 있습니다. 지금껏 제가 본 종각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종각이었습니다. 삭은 나무와 군데군데 발라놓은 시멘트 벗겨진 붉은 페인트 자국......
저 종각의 종은 손으로 찢어도 찢어질 듯하였습니다. 주조 당시 빠뜨린 이름들이 있었는지 어쨌는지 못으로 긁어 파놓은 듯한 시주자들의 이름도 여럿 보였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보십시오. 한 눈에 보아도 오래된 종인데 겉면에 불기 2999년 5월이라고 쓰여진 것이 보이십니까? 올해가 불기 2550년이니 실수치곤 참 재미있습니다. 제가 한자를 잘못 읽고 있나 하여 유심히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2999년이 맞는 것 같은데...2999년에 다시 이 종각에 나타나 맑은 종소리를 울려퍼지게 할 누군가라도 오려는 것인지...덕분에 헛된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금붕사 입구에서 동네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현재의 법당은 세번째 증축한 것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 오래된 먹구슬나무 앞에 있는 후원이 옛 법당 자리였다고 하네요. 먹구슬 나무 열매는 염주로 만들어 썼다고도 하는데 그 잎은 신선이나 해태가 먹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현재 금붕사 대웅전입니다.시원한 잔디밭 앞으로 웅장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용두상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조각하여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4.3 당시 불태워진 옛 금붕사의 기억 때문일까요. 대웅전을 지키고 있는 용 두 마리의 모습이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대웅전 안쪽에도 동자가 지키고 서 있습니다.
소박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무슨 생각엔가 잠겨 있는 모습입니다.
법당 안의 산신 탱화에도 참배하고
신선한 저 밀감으로 산산하게 가신 님께 마음으로 공양하고
국묵담 스님의 사리탑에도 예경하고 금붕사를 물러나왔습니다.
마음이 말라버린 연못에 빠질까 염려하여 일부러 부산한 초파일을 택해 다녀온 금붕사였습니다.
산책 가족님께도 한번 꼭 다녀오시길 권해드립니다.
곧 사라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옛 연못이랑 종각에도 들러보시고 쓰러진 대나무들이 서걱이는 소리도 들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