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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사찰

영천사

by 산드륵 2008.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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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漢拏)!

은하수를 끌어당겼다는 아름다운 그 이름.

한라의 진면목은

산 정상에서 별들이 �아지는 모습을 보고나면

알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천상에 오르지 않고서도

내가 걷고 있는 이곳이 곧 미리내임을,

별들이 흐르는 계곡임을 일러주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효돈천입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이미 나의 크기를 벗어난 것었이기에

언젠가 나도 그처럼 고요해지면

말씀드리고 싶을 때가 있을 거라 믿고

오늘은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효돈천 하류에 위치한

영천관, 영천사지.

효돈천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길의 시작입니다.

 

제1횡단도로를 타고 제주시에서 서귀포시로 가다보면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돈내코 입구)를 지나면 상효교를 만나게 됩니다.

이 상효교 동쪽으로 난 좁은 과수원길을 따라 가다보면

계곡으로 난 숲길이 있습니다.

그 숲길이 열리면

붉은 바위벽을 따라간 물길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물길 따라 한바퀴 굽이 돌면

끝모를 계곡이 나타납니다.

 

영천관과 영천사지는

사진 속 계곡 양쪽에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계곡 입구 왼쪽에서 바라본

영천관 입구입니다.

이 영천관은

관리들이 정의현과 대정현을 왕래할 때,

그리고 목장의 목마들을 점검할 때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입니다.

1466년 절제사 이유의가

정의현과 대정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역원조차 없어

불편함이 컸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합니다.

 

영천관지 내에는

동백나무와 무성한 잡풀들만이

세월을 덮고 있습니다. 

 

누군가 심어 놓은 동백나무들이

이제는 영천관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영천관이 세워진 뒤 3년 후인 1470년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약동은

이곳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남기기도 했습니다.

 

영천의 형승이 유달리 푸르고 신선하니

사방의 빼어난 경관은 피곤함을 잊게 하네

성판악과 한라 능선에 눈은 내려 쌓이는데

유감과 산귤잎은 더욱 더 푸르구나

하늘은 낮고 바다는 넓어 땅없는 듯 외로운데

개 짖고 새벽 닭 우니 사람 있음을 알겠네

피곤한 여정으로 님 계신 곳 물어 가는데

깨고 나니 꿈이어라 슬픔만 더할 뿐

 

무너진 돌담들이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이 영천관은

'영천관이 있었으나 지금은 폐지되었다'라는

탐라지(1653)의 기록으로 보아

약 180여년 가량 존치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을 둘러보며

인걸은 간데 없고

세월이란 이렇듯 무상한 것이구나 하며 뇌까리다가

계곡 입구 저 자갈더미 위에서 미끄러져

잠깐 완벽한 오체투지 자세를 유지하였습니다.

선비의 폼은 아무나 잡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갈 위에 누워서 잠깐 생각하였습니다.

 

영천관 맞은 편에는

영천사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천사는 고려말에 창건된 사찰로 밝혀지고 있는데,

인근에 위치한 목마장의 말을 점검하기 위해 내려온

관리들이 묵고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주목의 월계사, 수정사, 조천관, 김녕소와 대정현의 법화사 등과 함께

역원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곳 영천사지에는

지금도 기왓장들을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출토된다고 하는데

제 눈에는 한 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1652년 제주 목사로 부임한 이원진은

'영천사는 정의현 서쪽 55리에 있다'라고 기록하여

당시까지는 영천사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영천사의 주인은

지금은 저 진달래들로 바뀌었습니다.

 

다만 계곡 바위에 새겨진 관나암이라는

마애명만이

이곳을 오고가던 옛 사람들의 손길을 붙잡아 보게 합니다.

영천사 바로 앞 바위 벽에 새겨진

이 마애명은

제주에서 발견된 마애명 중

가장 오래된 마애명이라 합니다.



저 커다란 바위 벽에

관나암이라는 마애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계곡의 가장 큰 바위를 찾아보시면 됩니다.

 

영천관과 영천사지는

효돈천의 비경을 찾아가는 길의

서곡에 불과합니다.

 

마음 단단히 먹고

신발끈 단단히 조이고

이 길을 따라

깊은 계곡으로

기약없이 걸어들어가 보시길 권합니다.

 

 

 

500 Miles Away From Home / Bobby B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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