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가족님, 오셨습니까? 거두절미하고 먼저 항파두리성밖 길가에 내팽겨진 사진 속 유물들을 보십시오. 저 유물들은 저렇게 버려져도 되는 것들이 아닙니다. 이 석고와 비석은 고려시대 사찰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애월읍 유수암리 태산사터의 유물들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이유도 없이 1994년 이곳 항파두리성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항파두리성밖 길가에 저렇게 완전히 내팽겨져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이 2기의 석고는 원래 태산사 터의 72계단 옆에서 발견된 유물로 제주에서 이런 유물이 발견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정확한 것은 아직 조사조차 되어 있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방치되어 있습니다. 유수암 태산사터에서 사라진 비석을 찾아 헤매다 아주 우연히 저 몰골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버려진 것이 저 유물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에 참담했습니다.
태산사 비석입니다. 태산석이라 표기된 이 비석은 마모가 심하게 진행되기는 했지만 태(泰)자가 아직 선명하고 산(山)자와 석(石)자를 아주 희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석고와 비석은 오래 이곳에 버려져 있던 까닭에 한달전 인근 밭 주인이 훔쳐가 땅에 파묻어 놓았던 것을 겨우겨우 찾아온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저렇게 길가에 내팽겨져 있는 상태입니다. 절망적입니다.
원래 태산사 비석이 있어야 할 애월읍 유수암리 절동산으로 가는 마을 입구입니다. 이곳에 이 마을이 형성된 것은 고려시대 사찰 창건 이후였습니다.이곳 태산사지는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과 함께 제주도로 들어온 고승이 항파두성에서 가까운 이곳에서 맑은 샘물을 발견하고 태암감당이라는 사찰을 지은 것이 최초라 합니다. 항파두성 함몰 직전에는 김통정 장군이 그의 모친과 부하 몇 사람을 유수암 종신당으로 피신시켜 머물게 하였다고도 전해집니다. 이후 이 사찰은 태산사로 사찰명을 바꾸어 유지되었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마을 또한 자연히 형성되기에 이르렀던 것이죠.
마을 입구에 있는 이곳이 이 마을 지명의 유래가 되는 유수암입니다. 여름에는 차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이 샘물은 4.3사건 당시 마을이 폐허가 되면서 완전히 고갈되었으나 사람들이 돌아오자 다시 샘솟아 올라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귀한 의미로 남았습니다.
유수암 바로 위에는 이곳의 유래에 대한 내용이 새겨진 비문도 서 있습니다. 태산사에 대한 기록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상수도가 잘 개발되어 이 샘물의 용도도 많이 바뀌었지만 비문에 새긴 정성은 유수암에 대한 이 마을 사람들의 애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유수암 옆으로 난 좁은 돌담길을 걸어 올라가면 태산사터가 나타납니다. 저 태산사 72계단은 지금은 새롭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보셨던 2기의 석고는 바로 이 계단 옆에 나란히 세워져 있던 것이죠.
계단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입니다. 산책하기에 그지 없이 좋은 길입니다. 계단 아래 양옆으로 조성되어 있는 과수원에 태산사 건물이 들어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에서 수많은 도자기와 기와편 등이 수집되었습니다.
계단 중간에서 잠시 쉬면서 대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듣습니다. 이 계단 위, 절동산 꼭대기에는 초등학교 운동장같은 너른 평원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그곳에도 과거 태산사의 어떤 건물이 들어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만약 지속적인 조사가 이뤄진다면 태산사만의 독특한 건물 양식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하는데 그러나 현재, 그럴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계단 양 옆에 조성된 경작지와 과수원 터에서 상한년대가 1100년 정도되는 백상감청자편이 발견되었고 15세기 정도의 것으로 보이는 분청사기조화문발편도 수집되었습니다.
이곳 유수암 절터에는 근대에 들어 극락봉의 극락사가 4.3으로 폐허가 된 뒤 잠시 이전해 와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극락사는 다시 현재의 상귀리 지경으로 이전해 갔지만이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상귀리 극락사를 유수암절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절동산 일대에 태산사의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는데 지금도 과수원과 인근 지대에서는 옛 유물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절동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마을 전경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나무는 무환자나무입니다. 이 일대에는 제주도에서 지정 보호하고 있는 8그루의 무환자나무가 있습니다.
이 무환자나무 열매는 염주알로도 사용되어서 사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나무라 합니다.
이제 얼마 없으면 저 벌거벗은 무환자나무에도 새 잎이 돋을 것입니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푸르러집니다. 역사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러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는언제쯤 새 잎이 돋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산책길이었습니다. 태산사 비석을 찾지 못해 이곳을 헤매다가 우연히 항파두성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던 길. 그러나 항파두성 경내에도 없었고 어느 누구 하나 그 소재를 아는 이 없던 이 비석을 길가에 흉하게 버려진 모습으로 발견했을 때의 그 충격을 아직 잊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