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고 쉬고 싶을 때가 있으실 겁니다.
그때 시간의 길이, 혹은 삶의 질과 관계없이
그저 마음으로 맞아주는 벗이 있다면,
님이야말로
아침에 그 벗을 만나고
저녁에 죽어도 좋을만큼 행복한 분이실 겁니다.
그런 벗과 화전놀이를 떠날 수 있다면 하는 바램으로
표선면 성읍리 정소암을 찾아갔습니다.
성읍으로 가는 길의 영주산입니다.
이 영주산은 한라산, 송악산 등과 함께 제주 삼신산 중의 하나로 불리는 오름입니다.
신선이 살았다는 영산으로 일명 '영모루'라고도 하는데,
이 오름은 용이 하늘을 우러러 날아오르는 형상으로
이곳에 터를 쓰면 대대손손 부귀를 가져다 준다는 명산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영주산으로 가는 길의 연보라빛 무꽃이 아름답습니다.
그 멋은 아는 이들만이 알지요.
참 멋을 아는 이들이 말없이도 서로 알아보듯이....
이 연보라빛 무꽃 길을 따라
정소암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정소암입니다.
성읍 마을에서 영주산 서쪽으로 난 시멘트 길을
100m 정도 걸어가시면 됩니다.
도로가 개설되면서 온전한 옛 모습을 찾을 수는 없지만,
이 마을 옛 사람들만은 여전히 이곳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소암은 그 형태가 가마솥과 닮은 소(沼)라 해서
동네에서는 가매소라고도 불립니다.
이곳은 강남 갔던 제비도 옛집을 찾아온다는 음력 3월 3일 삼짇날을 맞아
화전놀이가 행해졌던 곳이라 합니다.
유생(儒生)은 유생들끼리, 농부는 농부들끼리, 부녀자는 부녀자들끼리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시조를 지어 읊거나 춤과 노래로 하루를 즐기는
화류(花柳)놀이 또는 화전놀이를 즐겼답니다.
특히 이곳 정소암은
정의 현감(縣監)이 관속과 육방 하인들을 데리고 와서
큰 잔치를 베풀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 잔치를 '정소암 화전놀이'라고 불렀는데
이 때 기생들이 '신목사 허리', '사랑가' 등의 민요를 부르면
사령들은 비명에 죽은 죄인의 영혼을 위로하며 칼춤을 추고,
향교의 유생들은 글을 지어 풍월을 다투었습니다.
이 때 장원을 한 사람에게는 황봉(黃封)이라 해서
상품으로 술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때 화전놀이에는 정의현 각 면에서 모여든 양반들도 참석하여,
어려운 일을 진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이 날만은 백성들이
관리들에게 얼마쯤 불경한 태도를 보여도 벌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곳 정소암은 길을 찾기도,
굳이 찾아뵈라고도 권하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자칫 실망이 크실 수도 있으니.
그런데도 고집스레 떠나신다면,
이 길의 끝에서 이곳을 만나실것입니다.
산 하나를 완전히 깎아놨지요?
관광단지를 만들려고 하다가 예산이 축소되면서
이제는 저수지 만든다고 저 고생들이랍니다.
어찌하오리까?
이곳에서 화전놀이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달빛이 너무 고운 밤
홀로 길 떠나 산책의 묘미를 즐기시고 싶을 때
고생해서 한번쯤 다녀와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들 어찌 지내십니까?
마음에 맞는 벗 찾기도 어렵지만
그 벗과 함께 하기도 더 어려운 인생.
잊혀진 정소암을 바라보며
마음 달래는 하루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