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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홍의녀

by 산드륵 2008.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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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디 시린 벌판에 꽃잎들이 가신 님을 쫓아가듯 뿌려져 있습니다.누군가 즈려밟고 갔을 것만 같은저 꿈길같은 꽃길을 지나다가웬지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 하나 있어 제 발길이 돌아섰습니다. 오래 잊고 있던슬픈 연인들의 이야기..... 이제는 애절한 사랑의 시로 남은홍의랑과 조정철의 이야기..... 들려 드리겠습니다.

 

 


 

제주로 유배온 연인 조정철을 사랑하여 결국 죽음까지 이르게 된 홍의랑의 묘로 가는 길입니다.애월읍 유수암리 유수암 주유소 옆으로 올라가다 보면저 벚꽃 길이 나타나고이어서 소나무 길이 시작되는데바로 이 벚꽃 길이 끝나는 지점에 홍의랑의 묘가 있습니다. 

 

 

 

 

홍의랑의 묘입니다.홍의랑의 본명은 홍윤애로그녀는 1777년 정조 시해 음모로 제주에 유배왔던 조정철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바로 다음 날을 기약할 수 없던 유배인과의 안타까운 사랑을 이어가던 홍의랑은둘 사이에 딸을 낳으며잠시나마 행복하였습니다.홍의랑이 사랑했던 조정철은 제주에 유배온 후1805년 나주로 이배되고 1810년 유배에서 완전히 풀려나기까지무려 33년간이나 유배생활을 계속합니다.특히 조정철의 집안은 그의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동생에 이르기까지모두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특이한 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홍의랑 무덤에 세워진 비석입니다.그녀의 죽음은 바로 그런 조정철의 집안 내력과도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1781년, 조정철의 할아버지 때부터 원수지간이었던소론파 김시구란 사람이 제주 목사로 부임해온 것입니다.제주에서 원수를 만난 김시구는 조정철을 죽일 계책을 세우던 중그의 적소에 출입하던 홍윤애를 붙잡아 고문을 하였는데이때 홍윤애는 사랑하는 사람의 무고를 주장하다매를 견디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태어난지 1개월밖에 안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남겨둔채... 

 

 

 

 

"외로운 신 목숨을 건져 피눈물로 임금의 은혜를 입었는데 이제 모든 것이 이 거친 섬 한 사또의 계율에 달렸네 어제 미친 바람이 한 고을을 휩쓸더니 남아있던 연약한 꽃잎을 산산이 흩날려 버렸네"  북헌 김춘택, 우암 남구명과 더불어 조선시대 제주 삼문학으로 불리며 제주의 풍속 등을 기록한 '정헌영해처감록'이라는 책을 써서 남기기도 했던 조정철이 당시의 심정을 노래한 시입니다.  홍의랑의 무덤가에서 바라본 한라산은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거두어야 하는한 남자의 슬픔처럼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유배지를 전전했던 조정철은 이후  유배에서 풀려나, 1811년(순조 11년) 그의 나이 55세가 되던 해다시 관직에 복직되어 방어사의 직책으로 꿈에도 그리던 슬픈 연인의 땅제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제주시 남성 밖에 있던 홍의랑의 무덤을 찾아 애달픈 시를 지어 저 비석에 새겼습니다. 

 

 

 

 

"옥같은 그대 얼굴 묻힌 지 몇 해던가 누가 그대의 원한을 하늘에 호소할 수 있으리 황천길은 멀고먼데 누구를 의지해 돌아갔나 진한 피 깊이 간직하니 죽음 또한 인연일까 천고에 높은 이름 열문에 빛나리니  일문에 높은 절개 모두 어진 형제였네  아름다운 두 떨기 꽃 글로 짓기 어려운데  푸른 풀만 무덤에 우거져 있구나"

 

 

 

원래 홍의랑의 묘는 제주시 삼도동의 전농로에 있었습니다.그런데 제주농업학교(옛 제주 농업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이곳 유수암으로 이장된 것입니다.이곳 홍의랑 무덤 비에 소화15년 즉,1940년 이장하였다는 기록이 선명한데현재 제주시 전농로에 있는 표지석에는 1840년 이장되었다고 하여기록에 문제점을 보이고 있습니다.사진 왼쪽이 홍의랑이 묘이고, 사진 오른쪽은 외손자 박규팔의 묘입니다. 

 

 


 

비통한 마음으로 홀로 가신 외할머니의 벗이 되어준 외손자 박규팔의 묘입니다.할머니의 슬픔과 그 마음을 기억하던 어머니의 아픔까지도이제는 모두 저 외손자가 껴안고 있습니다.  

 

 


 

처음 홍의랑의 묘가 있었던 곳입니다.지금의 제주시 삼도동 전농로 불교회관 바로 앞 길에 있습니다.지금은 조그만 표지석만이 홍의랑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무덤이 있었던 전농로 바로 맞은 편은 홍랑로라 불리며 지금도 홍의랑의 슬픈 사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오늘날에는 사랑을 죽음으로 맞바꾸었던 그녀를유배인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었던 섬처녀의 표본이라 하며비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그러나 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계산된 사랑이라면죽음까지 달려갈 수 있었을까요.어리석었을지 모르지만목숨까지도 모두 내주어 버린그녀의 애닯은 마음에소주 한 잔 뿌리고 오지 못한 것이 다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미워하지도사랑하지도 마라 하면서도그리움에 끌려가는 인생... 먼저 가신 님들의 무덤가에서한참을 서성이다 돌아온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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