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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예기소(藝妓沼)

by 산드륵 2008.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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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서늘한 아름다움은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되어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 사람

그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면

고달픈 인생도

그리 안타까워 할 것만도 아닐 것입니다.

 

효돈천의 숨겨두고 싶었던 비경

예기소(藝妓沼)로 가는 길에서

저는 그런 맑고 서늘한 아름다움과 만났습니다.

 

예기소는 효돈천 영천사지에서 하류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지만

계곡을 통해 영천사지에서 예기소까지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예기소로 가려면 길을 잘 찾는 벗이 꼭 필요합니다.

 

길동무와 함께

서귀포시 토평동에서 하례2리 방향으로 가다가 제2효례교를 지나면

우측에 남제주군 농업기술센터가 보입니다.

여기에서 100m 정도를 더 가면

하례2리(학림동)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이 나타나는데,

이 버스 정류장 왼쪽으로 난 길을 50m 정도 가서 

다시 왼쪽 과수원 사이로 난 길을 끝까지 걸어가시면

사진과 같은 강아지 형태의 바위가 나타납니다.    
고인돌일 수도 있는 이 바위 밑으로 내려가야

비로소 숨어있던 계곡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효돈천은 영천오름과 칡오름을 만나면서

두 갈래로 나눠집니다.

 

 

오른쪽으로 이어진 계곡의 모습입니다.

 

 

왼쪽 계곡의 모습입니다. 

 

 

계곡 가운데에는

흔들바위처럼 생긴 큰 바위가 이정표처럼 놓여 있습니다.

이 큰 바위 위로는

작지 않은 키의 저도 올라가기 힘들었는데

누군가는 기어이 바위에 올라가 이름들을 새겨놓았습니다.

저보다 먼저 찾아왔던 그 누군가의 흔적이겠지요.

 

물살도 저렇게 굽이돌며

바위에 세월을 새기고 있습니다.

 

계곡에는 이런저런 모양의 큰 바위들이

나그네 발길을 붙드는데

그중 이 바위는

마치 어린아이의 두 발을

꼭 붙들어 놓은 듯한 형상입니다.

 

계곡의 풍경에 붙들렸던 발목을

다소곳이 붉은 얼굴을 내민

연산홍과 시선이 마주쳐서야 빼냈습니다.

예기소의 슬픈 사연을

저 붉은 연산홍도 알고 있나 봅니다. 

 

예기소(藝妓沼)입니다.

이곳이 예기소라 불리는 데는 다음과 같은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옵니다.

원래 이곳은

조정의 관리들이

해마다 목장의 말 사육 상태를 점검하러 내려왔을 때

정의현감이 그들을 위해 주연을 베풀었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정의현감이 베푼 주연에서

절벽과 절벽을 가로지르는 밧줄을 타고

검무를 추며 건너오던 기생이

발을 헛디뎌 그만 이 소(沼)에 빠져 죽게 됩니다.

그후 이곳에서의 향연은 금지되었고,

사람들은 예기(藝妓)가 빠져 죽은 소(沼)라 하여

이곳을 예기소(藝妓沼)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이 모두 빠져 버렸을 때의 예기소 모습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직접 찾아가 보시면

그 깊이에 공포심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산책님들께 보여 드리고 싶어

비가 와서 물이 찼을 때의 모습과

물이 빠진 후의 모습을 모두 찍어봤는데

사진에서는 그 깊이가 잘 표현되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V자 계곡 오른편 바위를 잘 보십시오.

마치 사람이 바위 속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시나요?

 

바위 얼굴을 자세히 보여 드리려고

사진을 찍어왔는데

사람의 얼굴 형상은 간데 없고

붉은 눈동자만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

 

예기소 뒷쪽 

V자 계곡 입구입니다.

이 V자 계곡 뒤편에도

맑고 시린 효돈천의 풍경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절벽을 넘는 것은 불가능하고

넘나들다가는

예기(藝妓)의 운명을 그대로 따를 수 있으니

절대 시도해선 안됩니다.

예기소 우측 계곡 옆으로 올라가든지,

아니면 처음에 과수원으로 들어왔던 입구로 돌아가서

반대편 골목길로 계속 들어가시면

예기소 뒤편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소(沼)들이

계곡을 따라 계속 이어져 있는 이곳엔

햇빛도 한줌씩밖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오래도록 홀로 앉아 있으면

마음 속에 한 줄기 평화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이곳에서 아예 바위가 되어 버린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햇빛도 조심스러워 깨우지 못한

이곳 효돈천의 신비로움 속에서

산책님들

너무 오래 홀로 있지는 마십시오.

저 바위처럼 끝내 저 곳에 머무르고 싶어지실 테니까 말입니다.

 

예기소가 아니더라도

효돈천의 곳곳에는

아직도 자연의 신비로움이 그대로 묻어 있습니다.

더욱이 비 온 뒤에 길을 떠나신다면

그 신비로움을 제대로 만나실 수 있으실 겁니다 .

 

맑고 서늘한 풍경이

오래도록 사람의 마음을 붙드는 곳.

 

이곳 예기소를 찾으실 때는

가볍게 걸칠 수 있는 외투 하나와

혼자 걸을 마음도 준비하시길

먼저 다녀온 나그네가

당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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