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님들도 야간 비행기를 즐겨 타십니까?
저는 어쩌다 비행기를 탈 일이 있으면
항상 밤늦은 시간의 막 비행기를 이용하곤 합니다.
비행기가 어둠에 잠긴 제주 하늘을 한 바퀴 선회할 때
두 눈 크게 뜨고 창밖을 내다보면
손에 닿을 듯한 사람의 집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는 게 보입니다.
별 것도 아닌 그 풍경을 바라보며
저 조그만 집들 속에
이런저런 사연들이 가득하겠지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애틋해옵니다.
360여개가 넘는다는 제주의 오름.
하늘도 그리워 손을 내밀듯한 그 오름 속에도
사람의 집들만큼이나
이런저런 사연들이 깃들어 있음을
그저 먼 발치서 바라만 볼 때는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북제주군 조천면 와흘리에 위치한
것구리 오름의 보문사지(普門寺地)에도
아직 채 사라지지 않은 수행의 자취가 남아있다 하여
길가에 만발한 저 꽃길을 따라 동부산업도로를 달렸습니다.
것구리 오름입니다.
대천동 검문소에서 표선 방면으로 달리다보면
길섶나그네라는 전통찻집이 보이는데
바로 그 옆 길로 올라가시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오름은 다른 오름들과는 달리
한라산쪽(남쪽)이 낮고 바다쪽(북쪽)이 높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앉은 오름이라 하여 것구리 오름,
꾀꼬리가 많다 하여 꾀꼬리오름,
보문사라는 고려시대 사찰이 있었다고 해서 보문악,
조선시대 원(院)이 있었다 해서 원오름 등
이 것구리 오름에는
고려시대 사찰로 추정되는 보문사지(普門寺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폐사지 아래에는
남양홍씨 사당인 보문사(普門詞)가 들어서 있고
절터로 추정되는 경작지 바로 위에도
남양홍씨 가문의 무덤들이 사당을 내려보고 있습니다.
보문사지로 들어가시려면
이 것구리 오름 안내석 밑으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오름 안내석 밑으로
나무 두 그루가 일주문마냥 서 있습니다.
이 샘물은 원물이라고도 불리는데
그것은 조선시대 제주읍과 정의현을 잇는 원(院)이
이 오름 앞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보문사의 절물이었음이 확실한데 지금은 덮개를 씌워놓고 있습니다.
산기슭에서 조금씩 흘러내려온 물이 고여서 샘을 이루었습니다.
시원스럽게 흐르지는 않지만 맑은 물이 바닥까지 비추고 있었습니다.
샘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조성해놓은 연못입니다.
예전에는 가시덤불이 우거져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는데
최근에는 돌담을 쌓아 옛 형태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샘물 앞 보문사지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는
보문사재거구리악북(普門寺在巨口里岳北),
≪탐라지(耽羅志)≫에는
보문사재천동삼십리(普門寺在川東三十里)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곳에서 출토된 유적, 유물들을 조사한 결과
보문사는 고려시대 12세기를 전후하여 창건된 후
조선시대 17세기 전후까지 존재하던 사찰로 파악됩니다.
저 넓은 경작지에서는 지금도 부서진 기와 파편과 도자기 파편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문사지 바로 위에 자리잡고 있는 산소의 돌담에서도
사찰의 주춧돌로 추정되는 유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반듯하게 깎아놓은 저 돌 역시 사찰의 유물 중 하나가 아닌가 판단됩니다.
어골 무늬 기와입니다.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이 기와들은
이 곳에서 찾으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 있는 곳에서 한 바퀴 돌았더니
색깔도 다양한 기와 파편들을
금세 이 만큼이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절터 주변 산소의 동자석입니다.
죽은 이의 심부름꾼인 동자석은
웬일인지 짝을 잃어 혼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양하의 군락지라 할만큼 많은 양하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수풀 군데군데서 양하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찔레꽃만이 가득한 것구리 오름.
찔레꽃이
숲 속 군데군데에 하얀 길을 내고 있는 것이 보이시나요?
오늘 피었으니
내일은 지고 말
저 꽃을 바라보며
잔설처럼 소리없이 사라져 간
보문사를 떠올립니다.
보문사지에서 나와 북서 방향에서 본 것구리 오름입니다.
길섶 나그네 못미친 곳에 위치한 수당 목장 쪽으로 진입하면 됩니다.
북서쪽으로 이어진 말굽형 화구가
수당목장 쪽으로 이어지면서 초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수당 목장 안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산이 감싸안은 듯한 이곳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름 곳곳에 숨어있는 산탈도
지금이 제철이라는 듯 맘껏 붉은 입술을 내밀고 있네요.
사진과 같은 잣담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곳에서 조금 더 가면 길은 곧 끊어지고
용기내어 숲으로 들어서도 사방을 분간할 수 없게 됩니다.
길을 잃은 거죠^^
이후에도 몇 시간을 더 맴돌았지만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네 일상처럼
이 오름에서는 맴돌기만 할뿐
정상이란 처음부터 없는 것이었구나
위로하며 내려오는 길.
부끄러움 많은 찔레꽃을 만났습니다.
참 고왔습니다.
그래서 길을 잃은 것이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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