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쯤이면
도시의 이방인들은
금방 눈에 띕니다.
마치 5.16 도로로
잘못 접어든 어린 노루처럼
서성이는 그들.
회색빛 도시 속에서
초록을 닮은 그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맨발로
고운 흙을 밟으며
깊고 깊은 호흡으로
숲을 건너온
바람을
벗하고 싶다고....
도시의 인디언들....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초록의 영혼 잃지 않은
아름다운 산책님들....
님들과 함께
오늘은 가벼운 차림으로
한라산 영실의 존자암으로 떠나보려 합니다.
한라산 영실 입구에서
존자암으로 접어듭니다.
올해 초에 왔을 때만해도
한참 공사중이던
존자암 오솔길은
이제 단장을 끝냈습니다.
틈만 보이면 소망을 쌓아 올리는
우리네 여리디 여린 마음살이
예전에 왔을 때는
내가 무슨 소망을 쌓아놨더라 생각하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집니다.
전국 각지에 쌓아올린
나의 소망이
문득 모두 번뇌덩어리였음을 생각하니
새로운 번뇌를 더하는 손끝에
힘이 빠집니다.
모두 버리고 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단풍나무 숲 속에서
복원된 존자암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 존자암은
한국불교초전법륜지로 불리고 있는 곳입니다.
고려대장경 법주기에 의하면
발타라 존자가 그 제자들과 더불어
탐모라주로 나누어 가서 살았다라고 되어 있는데
바로 이 한라산 영실의 존자암이
그 발타라 존자가 전도를 위해 들어왔던 곳으로 불려집니다.
어디를 거쳐 이곳까지 지치지 않고 흘러왔는지
알 수 없는 것만큼이나
그 사실은
확인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존자암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국가로부터 전격적인 지원을 받던 비보사찰로서
현재 제주도 기념물 제 43호로 지정보호받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만호겸목사라고 새겨진
명문기와를 비롯하여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수많은 기와들이 출토되고있습니다.
발굴조사 결과에 의지하여 새롭게 복원된 대웅전 전경입니다.
법당 안의 부처님
그리고 한라산 산신령님
특이하게도 하얀 사슴과 함께 계십니다.
이 부도는 제주도 유형 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된
제주도 유일의 부도입니다.
고려말 혹은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제주도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팔각대석과 사리공 시설이 독특한 특징을 보인답니다.
종각도 새롭게 들어섰구요.
대웅전 뒤로는 국성재(國聖齋)가 들어서 있습니다.
존자암은 국가의 지원을 받던 비보사찰로서
이곳 국성재에서 나라에 제를 지냈답니다.
음력 4월 길일을 잡아
세 읍의 수령 중 한사람을 뽑은 다음 목욕재계하여
이 암자에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는데
지금도 이처럼 단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단풍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제 멋에 겨운 계곡이
연이어 있었습니다.
계곡의 물은
몇 사람이 쉬면서 발을 담가보기에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절대
계곡으로 내려가지는 마시길 간곡히 권하고 싶습니다.
가지 말라면 꼭 가보고야마는 성격 탓에
이곳에서 낭패를 당할 뻔했습니다.
길동무가 뱀을 밟고 까무라친 것이지요.
그것도 나뭇잎으로 변신해 있던 도도독사.......
정신을 차리고 하는 말에 의하면
뱀에 털까지 나 있었다고 하네요.
이런! 넋이 나갔군!
농담아닙니다.
절대 들어가지 마십시오.
고목의 심장마저 파열되었네요.
혹시 또 알겠습니까?
이곳 영실의 맑은 숲 속에서
조릿대보다 가벼운 바람과 어깨동무하고
한가한 휴일 한나절을 벗하시다 보면
오래된 번뇌도
저렇게 쩍 하고 갈라질지.
여름엔
숲과 이야기하며
가볍게 거니는 산행도
도시의 유목민들에겐
큰 행복이 되어 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온 존자암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생각하니
계곡의 오래된 단풍나무 숲이
여름보다
가을에
어떤 풍경으로 일렁일지
더욱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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