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람에 섞인 비 냄새에
마음까지 눅눅해지는 요즘이지만
보라빛 엉컹퀴꽃 한 아름 안겨드리며
님께
오늘의 길동무 되어 주시길 청합니다.
오늘 저와 함께 가실 곳은
서귀포시 보목동의 제제기 오름입니다.
보목동 포구에서 바라본 제제기 오름입니다.
바다를 좋아하는 이거나
초록의 숲을 좋아하는 이거나 간에
모두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곳.
제제기 오름.
이곳은 절지기가 살고 있었다고 해서
절지기 오름이라 불리다가
오늘날 제제기 오름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제제기 오름 바로 앞 보목동 포구의 모습입니다.
섶섬을 배경으로
원형을 잃지 않은 도대불도 잘 보존되어 있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입니다.
이 제제기 오름으로 오르는 산책로는
두 개의 코스로 나뉘어 있습니다.
어느 길로 올라도 결국 정상에서 만나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중 보목동 포구에서 바라보이는
이주일 별장 옆으로 오르는 길이
좀더 아기자기한 맛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별장은
보목동 포구 앞에서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산책로는 바로 그 옆으로 잘 단장되어 있구요.
그런데 산책로를 곧장 따라가지 마시고
별장 뒤쪽 이 바위벽을 따라 올라가면
1940년대까지만 해도 수행하던 스님이 계셨다는
수행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위벽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우선 이 첫번째 굴을 만나게 됩니다.
사진에는 표현이 잘 안 되었지만
한 사람이 충분히 들어앉아 있을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첫번째 굴에서 좀더 올라가면
비로소 이 수행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10사람 이상이 충분히 앉아 쉴 수 있을만한
산 속의 거실같은 이곳이
안타깝게도 사진에서는 제대로 표현이 안되었습니다.
직접 가서 보시면
넓고 탁 트인 정경이
마치 사계리의 산방굴사와 같음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굴 입구에 대나무를 엮어 문짝만 걸어놓으면
완전히 '나만의 공간'이 될 듯한 이곳에서
삼매에 들었을 옛 수행자를 생각합니다.
마음에 번뇌를 잔뜩 지고 올라왔지만
내려갈 때는
빈 지게 가벼운 마음으로
훌훌 내려갔을 것 같습니다.
수행굴을 나와
제제기 오름의 정상에 오르면
서귀포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보입니다.
언제보아도 가슴 설레는
문섬과 범섬의 풍경입니다.
섶섬도 보입니다.
이 제제기 오름이 있는 보목동은
여러가지로 불연(佛緣)이 깊은 곳입니다.
마을 이름인 보목은
보리수 나무라는 뜻에서 생겨났고
섶섬도
가섭존자의 '섭'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 하니까 말입니다.
정상의 전망대에서는
지귀섬 앞 바다의 맑은 풍경도 한 눈에 붙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풍경 앞에서는
짧은 한숨보다는
깊은 감탄이 절로 우러나지요.
찾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손가락으로 짚어 드리고 싶네요.
이 제제기 오름에서는
또 하나의 반가운 모습도 찾을 수 있는데
바로 혜관정사입니다.
혜관정사는
해방전후의 혼란한 시기에
치열한 삶을 살다가신
원문상 스님의 속가 동생인
혜관 스님이 창건하신 사찰로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참배의 깊이가 더해지는 곳입니다.
오름 정상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
커다란 바위가 손짓하여 올라가 봤더니
효돈 마을이 한 눈에 보입니다.
좌정하여
새벽을 맞이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 바위 밑으로도
작은 굴이 숨어있었습니다.
야트막한 오름 곳곳에
수행하던 이의 향기로운 산책길이
평화로이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이곳.
6월엔 제제기 오름으로 한 번 떠나 보세요.
이곳에서
옛 사람처럼
뒷짐지고 천천히 산을 오르며
마음의 지평을 넓혀보시는 것도
우기(雨期)를 보내는
멋진 방법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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