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이 참으로 고와서
예정에 없던 길을 떠났습니다.
한림읍 협재리의 비양도
내가 사는 곳을 벗어나
저 곳에 가면
나를 바라볼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배에 올랐습니다.
비양도로 들어가는 정기선은
한림항 선착장에서 오전 9시, 오후 3시에 출발합니다.
여름철에는 한시적으로 낮 12시 배가 운영되기도 합니다.
비양호에서 뒤돌아 보니 한림포구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사람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떠난 자리를 확인하게 되나 봅니다.
내 일상도 정박중인 저 어선들처럼 잠시 메어두고
바다에 솟은 초록 섬을 찾아 시선을 돌립니다.
비양도의 앞개 포구에 도착하였습니다.
빨간 등대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빨간 등대는 등대 왼쪽에 항구가 있다는 뜻이고
하얀 등대는 등대 오른쪽에 항구가 있다는 뱃사람들의 신호입니다.
비양도 안내문입니다.
비양도의 전체 해안길이는 약 3.5킬로미터로서
3시간 정도면 넉넉하게 섬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안내문의 현위치에서 비양분교 쪽으로 가는 길이
비양도의 아름다움을 빨리 만날 수 있는 길입니다.
드라마 봄날의 촬영장소로 더 유명해진 '비양보건진료소'
이곳에서 오른쪽 길로 천천히 걸어들어가시면 됩니다.
약간의 먹을거리와 마실 것이 있다면
더욱 여유있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비양분교입니다.
예전 그대로인 학교의 돌담이 정겨움을 자아내는데
분교에 대한 통합논의가 있어서 주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답니다.
주민들 소원대로
저 분교가 오래도록 이곳 비양도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비양분교를 지나면 펄랑못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펄랑못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자연못으로
주변에는 다양한 야생식물들이 자생하고 있고
철새들도 지친 날개를 쉬어가는 곳입니다.
비양봉 기슭이
펄랑못에 발목을 적시며 쉬고 있습니다.
예전 그많던 철새들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고
간혹 백로들만이 이곳을 찾는답니다.
해안성벽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고려시대 말에는 해안 방어를 위해 이곳 비양도에
망수(望守)를 설치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현재 그 흔적은 보이지 않고
다만 해안 여기저기에 무너진 성벽들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망수(望守) 대신 초소입니다.
대한민국의 명당은 모두 초소라지요.
바닷가에서는 비양봉 정상의 하얀 등대도 보입니다.
이 등대는 1958년 설치된 무인등대입니다.
이 비양봉에 올라야 하는데
함께 갔던 길동무가 뙤약볕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바람에
바로 눈 앞에 저 비양봉을 두고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때 이글이글 타오르던 제 심정은
여름 낮의 이글거리는 땡볕 못지 않았습니다.
수석거리입니다.
이 비양도는 제주도 최후의 화산활동 기록이 남아있는 섬입니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고려 목종 5년 1002년
'탐라의 산이 네 곳에 구멍이 열리어
붉은 색 물이 솟아나오기를 5일만에 그쳤는데
그 물이 모두 와석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비슷한 기록이 전해지구요.
수석거리는 이러한 비양도의 화산활동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현장입니다.
갖가지 다양한 화산석들이
이 수석거리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화산활동 시기가 기록으로 남아있는
이 일대 공유수면 1323평방미터에 널려있는 용암기종들은
천연기념물 제439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용암기종의 하나로
애기 밴 돌이라고도 불리는 이 바위는
애기 밴 여인이 등에 또 애기를 업고 한라산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김녕 해녀가 이곳에서 물질을 하다가 혼자 남겨졌는데
남편이 데리러 오리라 믿고 바다에서 저렇게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서 죽은 후 돌이 되었답니다.
제주 해녀들의 고달픈 삶을 엿들은 듯 하여 발길이 쉬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바닷속에도 조그만 섬처럼 화산활동의 흔적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날마다 이 별에서 저 별로 옮겨다녔던 어린왕자의 별도 저처럼 작았을까요?
코끼리 바위입니다.
이쯤에서 잠시 쉬면서 비양봉에 오를 체력을 준비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 코끼리 바위를 지나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전경 초소 옆으로
비양봉으로 오르는 옛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무성한 잡초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 출발했던 앞개 포구로 나왔습니다.
저 표지석 뒤로 보이는 전봇대 오른쪽으로
새로 개설된 비양봉 산책로가 있습니다.
두 개의 봉우리가 연이어져 있는 비양봉에는
초록의 분화구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으니 꼭 올라보시길 권합니다.
인구수가 점점 줄어 현재는 약 70여명밖에 살지 않는다는 비양도
그물을 손질하던 할아버지는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는군요.
관광객들이 숱하게 드나드는 섬이 되었지만
이 섬사람들은 여전히 그물을 손질하며
바다를 밭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작은 제주도를 보는 듯합니다.
하늘이 푸르다는 이유 아닌 이유로 다시 찾은 비양도는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잠깐 스스로의 자리를 벗어나
멀리서 바라보고 싶으실 때
이곳 비양도만큼 좋은 곳도 없는 듯합니다.
구름을 뿜어내고 있는 한라산을 바라보며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신을 돌아보다보면
그것만으로도 비양봉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충분히 지워버릴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