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그림 찾기
노을이 지면
잎새도 지고
아침이 되면
새들도 날아오를 테니
저 그림 속 참새 몇 마리는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주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숨어버린 것일까요.
어디서부터 그 이야기가 끊겨 버린 걸까요.
납읍리 금산공원
한림읍의 검은오름이 화체(火體)로 보이므로
이 납읍리의 된밭에 나무를 심어
불의 재앙을 막고자 했던
1670년경의 일이
이 금산공원의 시초입니다.
지금은 우거진 천연수림의 소중함으로 인해
천연기념물 제 37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후박나무, 신나무, 종가시나무,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소나무, 팽나무
나무가 자라면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심어집니다.
인상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이 마을 시인들은
나무 냄새, 바람 냄새 맡으며
달을 노래하였습니다.
포제청에서는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는
포제도 해마다 열렸습니다.
이곳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제주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다른 곳과는 달리
포신, 서신, 토신 세 신위를 모시고 있는 게
이곳만의 큰 특징이라 합니다.
전염병과 기근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제주의 옛 사람들
그러나 4.3이 닥치면서
제주 사람들에게
그보다 길고
그보다 깊은
흉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금산공원 내에 남아있는
허물어진 4.3성터.
지금은 밭담이나 산담으로 쓰려고
돌을 모두 빼간 탓에
포제단 뒤편에
그 일부만이 겨우 남아있을 따름입니다.
금산공원 안의 4.3성과는 달리
이 납읍 마을에는
사진처럼 마을을 빙 둘러싼 성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 성은 1937년
마을 서북쪽이 허하다는 풍수지리가의 조언으로
축성하게 된 것입니다.
48년 4.3 당시에는
이 성 밖으로 외곽성을 설치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모두 철거되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눈 감아도
꽃이 핀 자리는
찾아갈 수 있는데
눈을 떠도
찾을 수 없는 이야기가
더러 있습니다.
납읍과 한림
그리고 애월에서 서부산업도로로 통하는
납읍 마을 서쪽의 이곳은
'절빌레'로 불리는 곳.
납읍리 사지(寺址)로
한때 관심을 끌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마을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완전히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주홍빛 감에 상처가 없는 것은
새들이 잊고간 덕분이지만
사람들이 잊어버린 역사는
아주 숨은 그림이 되어버리나 봅니다.
납읍리에서 더이상
절빌레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인근의 하가리로 향하였습니다.
하가리는
잣마을이라고도 불리는데
마을 어르신의 말씀에 의하면
이는 아주 작은 돌들이 많아서 그리 불리는 것이랍니다.
최근 하가리에서는
이 마을에 보존되어 있는
옛 제주 돌담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이 마을 전체의 돌담에 대해
문화재 등록을 신청해 놓은 상태입니다.
밑부분은 작은 돌들로 쌓고
위에는 큰 돌로 눌러 놓았습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져버린 옛 돌담길을
이곳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올래.
밤에 파란 반딧불을 쫓아가면
도깨비에게 홀린다고 하여
밤길을 서둘러
집을 찾아가다가도
이 올래에만 들어서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곤 하였죠.
유년의 기억엔
집 가까이로 갈수록
구수한 냄새가 짙어지며
어린 발길을 끌어당겼었는데
지금은 그저 이방인이 되어
바라볼 뿐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온 동네 사람들이
골목으로 쏟아져 나와
집줄 놓던 기억이 아스라한데
호랭이로 집줄 감는 법을 배워주던
인자하신 할아버지!
아주 가끔 뵙고 싶습니다.
초집 안에 남아있는 말방아처럼
그리움도
기념사진이 되면
쓸쓸히 넘겨질 따름인가 봅니다.
이곳 하가리엔
정겨운 돌담길 말고도
야적배의 본거지였다는 연하못이 있어
나그네의 발길을 붙듭니다.
600여년전
야적들이 이곳에 본거지를 두고
온갖 만행을 일삼자
관가에서 토벌작전을 전개하여 전멸시켰는데
그 이후 이곳의 지형상
자연히 물이 모이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연하못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관군이 토벌해야했던
그들 야적들이
과연 어떤 이들인지 알 수 없지만
해마다 저곳엔 고운 연꽃이 무수히 피고지어
그들의 숨은 존재를
기억하게 합니다.
돌담에
깊이 뿌리내려 살아온
제주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도록
숨은 그림 찾기에
한 번 나서봄이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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