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는
등대를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그 등대를 따라
또다른 등대가
우도로 출항합니다.
우도입니다.
말의 방목장이었던 이곳에
헌종 8년 1842년
흉년에 시달리던
제주 본섬의 백성들이
우도로 들어가 농사를 짓겠다고
강력하게 요청하여
처음 취락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쇠머리오름을 품에 안은
우도의 모습.
우도의 심장이라 할
쇠머리오름 정상에도
등대가 보입니다.
제주도에 최초로 세워진
우도 등대는
1906년 3월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바르치크 함대가
인도양을 거쳐 제주 바다로 향하는 것을 탐지한
일본해군제독 도고헤이하치로가
이곳에 일본해군 초소를 세운 것이
시초가 됩니다.
지금은 이곳 쇠머리오름 정상에
등대박물관이 세워져
오가는 길손들에게
다양한 등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등대공원 아래로는
공동묘지를 안고 있는
알오름도 보입니다.
쇠머리오름이 수중분출로 형성된 이후
분화구 내부에 다시 작은 화구구(火口丘)가 솟아올라
지금과 같은 이중식 오름을 형성한 것이라 합니다.
쇠머리오름에서 알오름으로
오름을 타고 내린
결고운 잔디가 풍기는 평화로움은
우도의 제일 비경이라 할 만합니다.
남쪽 광대코지 절벽 아래 있는
달그리안 해안.
달그리안은
달이 그려진 굴이라는데
사진으로는 식별이 어렵군요.
달그리안이 절경이라고는 하나
들어가 볼 수는 없었기에
잔디바람처럼 결고운
우도의 또다른 아름다움 찾아
서빈백사(西濱白沙)로 향했습니다.
섬 너머 바다 건너
종달리까지도 이어져 있었다는
아름다운 산호밭.
산호밭에 앉아
보석을 캐내는 일이
참으로 신기하여
오랫만에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산호밭이
방파제 확장 이후 매년 사라지고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쉬움을 안고
해안을 걷습니다.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던
환해장성
제주 4.3사건 당시 만들어진
답다니탑
제주사람들의 삶은
돌무더기를 닮았습니다.
겨울바다에
마음을 띄워놓고
저녁 해를 기다릴까 했는데
겨울 배편은 4시 30분이면 끊어진다고 합니다.
서둘러
우도 충혼묘지 인근에 있는
진사 김석린의 유애비(遺愛碑)를 찾았습니다.
고달픈 우도 백성들을 사랑하였기에
이렇게 오래 기억되고 있나 봅니다.
김석린의 생가터 부근에 있는
진사통.
이 섬 사람들이
물허벅 지고 다니며 떠다 먹던 물이라 합니다.
우도 동천진동에 위치한 금강사
현판이 없어
나그네는 몇 번이나
오락가락했지만
마을 주민들은
저 숲 속에 있지 하며
눈으로 금강사를 가리킵니다.
눈으로
성산포를 보며 삽니다.
언제나 그곳에 있어주는 성산포
그러나 우도 사람들은
그 성산포를 바라보며
기다림만 배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세화오일장으로 달려나갔던
우도 해녀들의 자손들이
여전히 물질을 배우며 살아가는 곳
성산포를 바라보며 사는
그들의 삶이
이제는 일출 속에서
평안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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