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운명의 육각 주사위가 그대에게 던져진다면
그대는 무엇을 손에 쥐고 싶습니까?
원물오름에서 내려다본 안덕면 동광 육거리
이곳에서1862년 강제검이, 1898년 방성칠이, 1901년 이재수가
1908년 김석윤 스님과 함께 항일 거사를 꿈꿨던 고사훈이
운명의 육각 주사위를 앞에 두고 하나같이 선택한 길이 있습니다.
살기 위해 죽음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무등이왓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주사위마저 던져지지 않았습니다.
동광 육거리 주유소에서 동쪽으로 난 길을 오르다 마주치게 되는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무등이왓 저 길로토벌대가 내려온 것은1948년 11월 15일이었습니다.
중산간에 자리한 이 마을의 비극은
한 마을 주민 100여명이 한꺼번에 희생 당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짚신을 끌며 동광 육거리에서 뿔뿔이 흩어질 때
이제 그만 끝인듯 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그해 12월 12일
저 올래 안에 쓰러져 있는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밤길을 몰래 걸어 올라왔던 이들이
잠복해 있던 토벌대에 의해 산 채로 화형을 당하게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 잠복 학살사건 이후로
마을엔 완전한 정적이 감돌고 아무도 시신을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들이 마을로 내려와
시신을 먹어 뽀얗게 살이 올랐고,
살이 오른 멧돼지들은 마을을 떠돌다가 다시 토벌대의 식량이 되었습니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수탈해가던 일제강점기가 끝나자
이 고단한 중산간에서 손으로 돌을 일구며 이제는 잘 살아보자 했는데
그 뒤를 이어 경작지 면적을 기준으로 무작정 세금을 수탈해가던 미군정이 들어오며
약탈에 지칠대로 지쳤던 이들은 이제 저 곳에 없습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합니다.
동광 육거리에서 어느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도
상처를 피할 길이 없습니다.
녹차단지 방향으로 500미터 정도 가다보면
이번에는 잃어버린 마을 삼밭구석이 나옵니다.
삼을 재배하던 곳이라 해서 마전동이라 불렸던 이곳
차가운 위령비만이 이곳에 마을이 있었음을 말해줄 뿐입니다.
삼밭구석 팽나무 밑에서 삼을 재배하며 살던
이 마을 사람들과 무등이왓 사람들 중에서
48년 11월 21일 대학살 이후에도 살아남은 이들은
토벌대의 총칼을 피해 인근의 큰넓궤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도너리오름 아래 너른 곶자왈 지대에 위치한 큰넓궤입니다.
이곳으로 150여명 이상의 인근 주민들이 피신해 들어왔었습니다.
입구는 한 사람이 기어 들어가야 할 정도로 좁지만
내부는 도끼질을 해도 될 정도로 넓은 자연 동굴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도얼마 못가서 발각되고 맙니다.
당시 토벌대는 이 굴을 발견하고 보충병력을 이끌고 올 생각이었는지
굴 입구를 돌로 막은 후 곧장 내려갔답니다.
이때 다른 굴에 피신해 있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큰넓궤의 사람들에게 알렸고 큰넓궤 사람들은 급히 이곳을 빠져 나와
한라산 영실의 볼래오름까지 피신합니다.
그러나 겨울철, 눈 위에 새겨진 발자국 때문에 그들 역시 모두 붙잡히고
서귀포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이듬해 1949년 1월 22일 정방폭포에서 모두 학살됩니다.
동광 육거리에서 혹시라도 눈물을 감추고 싶지 않다면
동광 검문소 바로 밑, 헛묘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겨 보십시요.
희생자 시신을 찾지 못한 가족들이 옷가지 몇 점 묻어놓고 만들어 놓은 헛묘입니다.
그리고 이곳 육거리에서 이제 그만 마음을 달래고 싶다면
원물오름 가는 길을 찾는 게좋을 것 같습니다.
동광검문소 바로 위 안덕면 충혼 묘지 옆 길에는 원물이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원(院)이 있던 곳이라 하여 이곳 세 곳의 샘물을 원물이라 부릅니다.
원물오름 정상에서 산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이 원물오름 일대는
일본군이 파 놓은 진지동굴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산아저씨가 앉아 있는 바로 옆 구덩이도
그 진지동굴의 한 형태입니다.
지금은 매몰되어 있습니다.
원물오름 북쪽 기슭에서도
동굴 입구가 발견됩니다.
오름 여기저기에서
일본군이 초소로 사용하기 위해 파놓은 흔적들도 쉽게 눈에 띕니다.
원물오름 정상에 서니당오름, 정물오름
그리고 금악과 비양도까지도 한 눈에 바라다보입니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에서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도망치던 아이,
그 아이 신발을 줍느라 뒤에서 총을 맞고 쓰러지던 할머니
그리고 나약한 그들을 잡기 위해 무기를 들고 오르내리던 이들을 떠올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던지는 주사위는 육면이 모두 평화였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하나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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