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몸을
빌어내
영혼은 산다.
그리하여
나의 몸은 가볍다.
그리하여
나의 영혼도 가볍다.
이여도사나 쳐라 쳐라
잘도 헌다 이여도사나
요 네 상척 부러지면 선흘곶디 곧은 낭이 없을소냐
선흘리 원시림지대 동백동산
제주도에서 평지에 남아 있는 난대성 상록활엽수가 가장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곳
1900년초 화전농사가 활발해지면서 과거의 식생은 파괴되었지만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빗죽이나무, 동백나무 여전히 울울창창한 곳
그곳에 현재에도 무수히 남아있는 이 유적들은 숯을 구워 살던 옛 사람들의 흔적이라 합니다.
숲으로 들어와
숯을 굽던 사람들이 이슬을 맞으며 머물렀던 곳이라 하는데
그 모습이 결코 낯설지가 않습니다.
이 동백동산에서 반못굴은 100미터, 목시물굴은 700미터
그런데 이 돌집은 제주 4.3 당시 선흘리 마을 사람들이
한꺼번에 학살당한 목시물굴 앞에서 만났던 바로 그 모습!
4.3 당시 외할머니가 이곳 동백동산 숲 속에 숨어 살았다라는
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숲 속 여기저기에 숱하게 흩어져 있는 이 돌집 앞에서
자꾸만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가 숲을 울리고 지나는 것만 같습니다.
동백동산 숲 속의 바위 굴
바닥은 편평하게 다져놓았고
불을 피웠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이제 저 곳에 온기는 없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숲길을 빠져나오면
곶자왈의 아름다운 샘물
제주도 기념물 10호로 지정된 곶자림 동백동산은
아직 고운 숨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동백동산에서 동백이 떠났듯이
저 샘물의 주인들도 이곳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진은 동백동산에서 100여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반못굴
1948년 11월 21일 토벌대는 선흘마을을 불태웠고
곱게 키운 곡식을 버리지 못해 마을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곳 곶자왈의 동굴 속으로 숨어 듭니다.
그러나 1948년 11월 25일 반못굴이 먼저 발견되면서
현장에서 15명이 사살되고 남은 사람들은 함덕에 있던 군 주둔지로 끌려갑니다.
그곳에서 쇠좆매에 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입에서
한 덩이 피가 쏟아지며 인근 목시물굴의 정체도 밝혀집니다.
1948년 11월 26일 새벽
이곳 목시물굴에서 70여명의 주민들이 현장에서 사살됩니다.
대섭이 굴에 숨어 있던 그 사람도 그렇게 갔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이 지난 27일에는
웃밤오름 밴뱅디굴에서
또 하룻밤이 지난 28일에는 함덕에 수용되었던 주민들이 같은 길을 갔습니다.
그 길 위로 새카맣게 타버린 섬사람들의 노랫소리 들립니다.
들어 보세요....
이여도사나 이여도사나....
이여도사나
쳐라 쳐라 잘도 헌다
이여도사나
요 네 상척 부러져도
선흘곶디 곧은 낭이 없을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