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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입니다.
가시나무에도 꽃이 피는4월입니다.
상처 위에 이제는 꽃이 피어야할 4월입니다.
선흘리 2734번지
낙선동 성터
1948년 11월 20일 토벌대에 의해 선흘리가 초토화된 후
해안으로 소개되었던 마을 주민들이 올라와 이 성을 쌓은 것은 1949년 봄날의 일이었습니다.
원래 마을이 있던 곳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알선흘이라 불리던 이곳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됩니다.
토벌대는 해안으로 소개되었던 마을 주민들이 마을 재건을 위해 다시 돌아온 이후에도
무장대와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재건하는 마을마다 이와 같은 성을 쌓도록 합니다.
1949년 봄
한달 동안 살아남은 늙은이와 어린이들이 등짐을 져서 돌을 날랐습니다.
성밖으로는 2미터 너비의 도랑을 파서 가시를 묻고
토벌대의 확인을 거친 주민들만 통행증을 발급 받아 성 안에서 살도록 했습니다.
낮에는 성안의 함바집에서 점검을 당하고
밤에는 다시 해안으로 내려가 이슬을 피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1950년 6.25가 발발하자
살아남은 젊은 남자들은 토벌대의 총알을 피하기 위해
애국심을 증명하기 위해 해병대에 다투어 자원입대합니다.
그중에는 나이를 속인 어린 중학생도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4월입니다.
꽃들이 다투어 피며 이 땅에 헌화하는 4월입니다.
총탄은 녹이 슬었지만 꽃들의 향기는 녹슬지 않고 다시 4월을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