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그것도
만나서 서로 빛이 되는
그런 만남...
그런 만남을 엿보려면
달빛의 은은함 속에서 그 빛을 더하는
오름의 여왕, 다랑쉬로 오르면 될 듯합니다.
그러나 그 고운 오름은 제껴두고
다랑쉬 발치에 놓인
다랑쉬굴로 가는 길에서는
그 아름다움조차도
시선에 잡히지 않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찾아낸 다랑쉬굴
그 길로
힘들지만 두 손 꼭 부여잡고 함께 가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다랑쉬굴!
제주 근대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다랑쉬굴의 최초 발견 모습입니다.
이 다랑쉬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91년 12월 22일의 일입니다.
자료사진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날 이곳에서는
9세의 어린이와 51세의 아주머니를 비롯 11명의 유골과 더불어
질그릇, 놋그릇, 놋수저, 무쇠솥, 된장 항아리 등 생활용품들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증언에 의하면
1948년 11월 18일을 전후하여
김진생씨 일가, 고순경씨 형제, 박순녀 씨 가족, 이홍규씨 가족 등이
다랑쉬굴 근처로 피난하였는데
그해 겨울
제9연대 및 경찰, 민보단 등 군·경·민합동토벌대가
다랑쉬오름을 포위하고 빗질하듯 토벌작전을 펼치며 내려오다가
이 굴을 발견하였습니다.
토벌대는 나오라! 나오라! 소리쳤으나
사람들이 나오지 않자 수류탄을 던집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이 나오지 않자,
검불로 불을 피운후 구멍을 막아 질식사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50여년 세월
저들은 질식한 그대로 굴 속에 갇혀있다가
저 몰골로 발견되기는 하였으나
사건이 전부 규명되기도 전에
유골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지고
입구는 봉쇄되었습니다.
다랑쉬굴로 가는 길
세화읍사무소 옆 길에서
송당 방향으로 5킬로미터를 달리면
사진과 같은 표지판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은월봉 쪽으로 800미터 정도를 가면
월랑봉 활공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다랑쉬오름 산책로가 나옵니다.
다랑쉬오름 산책로 입구입니다.
구좌읍 세화리 산 6번지에 자리한 이 다랑쉬오름은
표고 382미터의 높은 오름입니다.
구좌읍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이 오름에 오르면
구좌읍 일대가 눈에 선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4.3 당시에는 유격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잡기도 했었습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고이는
이 오름의 분화구는
어느 달빛 고운 날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앞을 스쳐 지나가기로 하겠습니다.
다랑쉬 오름을 지나 조금 더 가다보면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 마을이 나타납니다.
4.3 당시 토벌대에 의해 완전 소각되어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습니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팽나무는 여전히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싶은 듯
무성한 잎사귀를 달고 있습니다.
이제는
잃어버린 마을 표지석만
그 그늘 아래서 쉬고 있습니다.
다랑쉬마을...
마을 안쪽 돌담 구석 구석에서 발견되는
사기 그릇과 항아리 조각들이
이 마을 사람들의 깨져버린 삶을
대신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랑쉬굴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도 더 어려웠습니다.
최초 발견자와 함께 동행했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역사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보였습니다.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길
그 길로 한 번 나서볼까요.
다랑쉬 마을 표지석을 지나면
길 왼쪽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보입니다.
사진은 시멘트 길이 끝나는 곳의 30미터 전방입니다.
사진 속 대나무 숲 바로 옆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사진처럼
대나무 숲이 양쪽에 마주하여
대문처럼 열린 길이 보입니다.
이 길에서 직진하여
오른쪽 대나무 숲을 지난 후
오른쪽 용눈이 오름 방향으로 길을 꺾습니다.
용눈이 오름이 보이는 이곳에서
왼쪽 자귀나무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보물섬을 찾아가는 것도 아닌데
참 난감하시죠...
그래도 용기잃지 마시고 함께 걸어주십시오.
저 길조차 잃어버린 길이 되지 않도록...
용기를 내어
자귀나무 왼쪽에서 직진하면
철조망이 나타납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고육지책으로
철책에 빨간 면장갑을 끼워두고 왔습니다.
현장에 가보시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되실 겁니다.
저곳에서 저 철조망을 넘으세요.
그곳에 다랑쉬굴이 숨어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기까지 잘 찾아오셨어도
다시 다랑쉬굴을 찾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철조망에서 바라본 왼쪽 풍경입니다.
야트막한 동산에
마치 굴 입구처럼 생긴 바위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이곳에 다랑쉬굴이 숨어 있는 줄 알고
몇 차례 헛걸음을 하였습니다.
다랑쉬굴!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동산에서 30m 정도 오른쪽 방향에 있습니다.
굴 입구는 커다란 바위로 막혀있고
바로 앞에는 조그만 표지석이 놓여있습니다.
우거진 억새 틈에 몸을 숨긴 다랑쉬굴
처음 이 굴이 발견된 후
무슨 이유에선지
시멘트를 바르고 큰 바위로 굴입구를 막아 놓아
이제는 다랑쉬굴 표석만이
이곳이 다랑쉬굴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발견 당시
그들은
고통을 참지 못한 듯
손으로 동굴 바닥을 마구 파헤치다가 코를 바닥에 박은 형상으로
죽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누구였든
또 어떤 이유에서였든
이제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아픔이 없기를
한 마음으로 기원해도 부족할 터인데
이제 우리는 다시 그 검은 동굴 위에
저 커다란 바위돌을 짓눌러 놓았습니다.
아직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요?
다랑쉬 오름 위로
구름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한참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고일 시간이 되어가나 봅니다.
저 오름에선
이 일대가 훤히 내려보인다 하니
그날 그때의 참상을
다랑쉬는 모두 보고 있었겠지요.
그렇다면
오늘의 저 운무(雲舞)는
누구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슬픈 손짓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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