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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와 3

다랑쉬 굴

by 산드륵 2008.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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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그것도

만나서 서로 빛이 되는

그런 만남...

 

그런 만남을 엿보려면

달빛의 은은함 속에서 그 빛을 더하는

오름의 여왕, 다랑쉬로 오르면 될 듯합니다.

 

그러나 그 고운 오름은 제껴두고

다랑쉬 발치에 놓인

다랑쉬굴로 가는 길에서는

그 아름다움조차도

시선에 잡히지 않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찾아낸 다랑쉬굴

그 길로

힘들지만 두 손 꼭 부여잡고 함께 가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다랑쉬굴!

제주 근대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다랑쉬굴의 최초 발견 모습입니다.

이 다랑쉬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91년 12월 22일의 일입니다.

자료사진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날 이곳에서는

9세의 어린이와 51세의 아주머니를 비롯 11명의 유골과 더불어

질그릇, 놋그릇, 놋수저, 무쇠솥, 된장 항아리 등 생활용품들도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증언에 의하면

1948년 11월 18일을 전후하여

김진생씨 일가, 고순경씨 형제, 박순녀 씨 가족, 이홍규씨 가족 등이

다랑쉬굴 근처로 피난하였는데

그해 겨울

제9연대 및 경찰, 민보단 등 군·경·민합동토벌대가

다랑쉬오름을 포위하고 빗질하듯 토벌작전을 펼치며 내려오다가

이 굴을  발견하였습니다.

토벌대는 나오라! 나오라! 소리쳤으나

사람들이 나오지 않자 수류탄을 던집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이 나오지 않자,

검불로 불을 피운후 구멍을 막아 질식사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50여년 세월

저들은 질식한 그대로 굴 속에 갇혀있다가

저 몰골로 발견되기는 하였으나

사건이 전부 규명되기도 전에

유골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지고

입구는 봉쇄되었습니다.

 


다랑쉬굴로 가는 길

 

세화읍사무소 옆 길에서

송당 방향으로 5킬로미터를 달리면

사진과 같은 표지판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은월봉 쪽으로 800미터 정도를 가면

월랑봉 활공장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다랑쉬오름 산책로가 나옵니다.

 


다랑쉬오름 산책로 입구입니다.

구좌읍 세화리 산 6번지에 자리한 이 다랑쉬오름은

표고 382미터의 높은 오름입니다.

구좌읍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은

이 오름에 오르면

구좌읍 일대가 눈에 선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4.3 당시에는 유격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잡기도 했었습니다.

 

달빛이 은은하게 고이는

이 오름의 분화구는

어느 달빛 고운 날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앞을 스쳐 지나가기로 하겠습니다. 

다랑쉬 오름을 지나 조금 더 가다보면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 마을이 나타납니다.

4.3 당시 토벌대에 의해 완전 소각되어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습니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팽나무는 여전히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싶은 듯

무성한 잎사귀를 달고 있습니다.


이제는

잃어버린 마을 표지석만

그 그늘 아래서 쉬고 있습니다.

다랑쉬마을...


마을 안쪽 돌담 구석 구석에서 발견되는

사기 그릇과 항아리 조각들이

이 마을 사람들의 깨져버린 삶을

대신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랑쉬굴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도 더 어려웠습니다.

최초 발견자와 함께 동행했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마도 역사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보였습니다.

 

그래도 외면할 수 없는 길

그 길로 한 번 나서볼까요.

 

다랑쉬 마을 표지석을 지나면

길 왼쪽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보입니다.

사진은 시멘트 길이 끝나는 곳의 30미터 전방입니다.

사진 속 대나무 숲 바로 옆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사진처럼

대나무 숲이 양쪽에 마주하여

대문처럼 열린 길이 보입니다.

이 길에서 직진하여

오른쪽 대나무 숲을 지난 후

오른쪽 용눈이 오름 방향으로 길을 꺾습니다.

용눈이 오름이 보이는 이곳에서

왼쪽 자귀나무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보물섬을 찾아가는 것도 아닌데

참 난감하시죠...

그래도 용기잃지 마시고 함께 걸어주십시오.

저 길조차 잃어버린 길이 되지 않도록...

용기를 내어

자귀나무 왼쪽에서 직진하면

철조망이 나타납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고육지책으로

철책에 빨간 면장갑을 끼워두고 왔습니다.

현장에 가보시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되실 겁니다.

저곳에서 저 철조망을 넘으세요.

그곳에 다랑쉬굴이 숨어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여기까지 잘 찾아오셨어도

다시 다랑쉬굴을 찾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철조망에서 바라본 왼쪽 풍경입니다.

야트막한 동산에

마치 굴 입구처럼 생긴 바위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이곳에 다랑쉬굴이 숨어 있는 줄 알고

몇 차례 헛걸음을 하였습니다.

다랑쉬굴!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동산에서 30m 정도 오른쪽 방향에 있습니다.

굴 입구는 커다란 바위로 막혀있고

바로 앞에는 조그만 표지석이 놓여있습니다.


우거진 억새 틈에 몸을 숨긴 다랑쉬굴

처음 이 굴이 발견된 후

무슨 이유에선지

시멘트를 바르고 큰 바위로 굴입구를 막아 놓아

이제는 다랑쉬굴 표석만이

이곳이 다랑쉬굴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발견 당시

그들은

고통을 참지 못한 듯

손으로 동굴 바닥을 마구 파헤치다가 코를 바닥에 박은 형상으로

죽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누구였든

또 어떤 이유에서였든

이제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아픔이 없기를

한 마음으로 기원해도 부족할 터인데

이제 우리는 다시 그 검은 동굴 위에

저 커다란 바위돌을 짓눌러 놓았습니다.

 

아직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요?

다랑쉬 오름 위로

구름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한참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달빛이 고일 시간이 되어가나 봅니다.

 

저 오름에선

이 일대가 훤히 내려보인다 하니

그날 그때의 참상을

다랑쉬는 모두 보고 있었겠지요.

 

그렇다면

오늘의 저 운무(雲舞)는

누구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슬픈 손짓인지 알 것도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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