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관음사에서
노란 봇짐지고
걸어 내려온
가을은
이제야 불탑사에
다다랐습니다.
생로병사의 길이
저 가을 나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네 삶도
회향이 더 고운
저 나뭇잎만 같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제주시 삼양동에 위치한 불탑사.
고려 충렬왕 26년에
원나라의 기황후가
아들을 낳기 위해
이름난 풍수가들을 동원해
명당 자리를 찾던 중
삼첩칠봉이 감싸안은 이곳을 발견하고
원당사라는 사찰을 창건했는데
그것이 오늘날 불탑사의 시초라고
전해내려오는 곳입니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 탓인지
독특한 모자를 쓴
사천왕상의 모습 앞에서
다시 한 번
이 사찰의 역사를 되짚어 보게 됩니다.
이 절의 역사를 밝혀줄 유물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지만
사천왕이 손에 들고 보호하는
저 석탑은
이곳에서 보물1187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습니다.
불탑사 대웅전 모습입니다.
1653년 조선 효종 4년에 쓰여진 이원진의 탐라지에
재주동이십리(在州東二十里)라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때까지 존속했었을 것으로 보이는 원당사는
이후 쇠락의 길을 걷다가
1914년 무렵 다시 일어섰고
이어 1923년 안도월 스님과 안봉려관 스님에 의해
본격적인 출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주 4.3사건이 일어나면서
이 불탑사 역시 큰 아픔을 겪었습니다.
토벌대는 사찰 주변 일대의 숲을 베어내고
대웅전과 요사채를 뜯어내어
사람이 거주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대웅전의 부처님은
당시 주지 스님이셨던 경호스님께서
등에 업고 마을로 피신을 갔다가
1953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도량 안의 미륵존상
아픔 없는 세상을 소망하는
간절한 마음들이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제주 4.3 당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불탑사 재건을 위해 애쓰셨던
경호스님의 공덕비
경호스님이 머무셨다는 요사채
요사채 처마 아래엔
등화관제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옛날 전선 배관들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홀로
옛 기억의 끈을 붙들고 서 있는
원당사지 5층석탑.
이 탑은
제주도 현무암으로 조성된
제주 유일의 탑입니다.
북극성을 향하고 있는 독특한 형세가
별의 기운을 받고자 했던
천문사상의 흔적이라고도 합니다.
파편이 된 역사
그 속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무늬의 기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만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오직 이 순간만이 진실이라고
말없이 한 방 먹이는군요.
허허로운 마음으로
대웅전 처마 밑에 서니
삼첩칠봉의 주봉인
원당봉의 고운 능선이
어서 오라 손짓합니다.
산이 손짓하니
회향할 준비를 끝낸
저 나뭇잎처럼
바람이 가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하겠지요.
불탑사, 원당사, 문강사 등
세 송이 연꽃을 품은 원당봉.
천하의 명당으로 이름난
원당봉으로 오르는 산책로 입구입니다.
마을사람들이 기우제를 드리던 제터가 남아있습니다.
제터 안에 기념비도 보입니다.
찬 바람에 쫓기며
원당봉 정상에 올랐습니다.
표지석이 있는 이곳은
봉수대가 자리잡고 있던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봉수대의 정확한 위치는
이곳이 아니고
불탑사 바로 뒤 앞오름이었다는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가까이 사라오름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더이상
교신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언 손을 모아 합장하고
마음의 모닥불을 피워
그대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
실어 보내니
수신자는 없어도
홀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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