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가을 바람에 쫓기며
이런 생각합니다.
행여
"더 이상 너에게선
옛 그 고운 향기
찾아볼 수 없구나"
저를 보며 그러실까
차디찬 가을 바람에 쫓기며
두려운 마음
감추지 못합니다.
법화사 가을 연꽃
무상의 계절에 핀
저 연꽃
플라스틱 연꽃
그렇습니다.
저 연꽃은 플라스틱 연꽃입니다.
향기를 얻지못한
가을 속의 플라스틱 연꽃입니다.
플라스틱 연꽃 저편엔
고운빛 얼굴 내민
가을 속의 수련
이곳에서
향기는 누구의 것일까요?
고려시대 시승
혜일스님께서
대나무 솔가지 끌고 노닐던
이곳 법화사
그 구품연지에 찾아온
가을 풍경 속에서
플라스틱 연꽃마저도
마음에 품는 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향기를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역사상 제주도 최대 사찰로
노비를 280여명이나 거느리고 있던
비보사찰 법화사
통일신라 장보고에 의해
해상활동의 안전과 지속적인 거점 확보를 위해
그 교두보로 창건되었을 것이라는
새로운 학설이 대두되면서
더욱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법화사입니다.
태종 6년(1406)에는
법화사의 미타삼존불이
원나라 때 양공이 만든 것이라는 이유로
명나라 영락제의 명을 받든 황엄 등이
명나라로 모셔가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 계획이
탐라의 형세를 엿보려는 의도일지 모른다는
조선 왕조의 판단으로
급박하게 조선왕조에서 파견한 김도생 등에 의해
옮겨지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현재의 법화사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대웅전 안의 탱화
대웅전의 벽화
마음이 곧 부처라고 일러주시는데
플라스틱 연꽃에서
향기를 보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주지스님의 거처 앞에서
대잎이
가을 바람 소리를 냅니다.
시공을 빗겨나 있는
맑은 종소리에 마음을 맡깁니다.
서홍마을 눌왓동산의 백팔년된 소나무와
동광마을을 수수만년 지켜오던 염원석이
법화사의 뜰로 옮겨왔습니다.
이곳에서
고려시대 시승
혜일 스님의 시를
어렵게 기억해 냅니다.
법화사 경치가 화려하고 그윽하니
대나무 솔가지 끌고 휘두르며 나 홀로 노네.
만일 세상에 상주(常住)하는 상(相)을 묻는다면
배꽃은 어지러이 떨어지고 물은 분탕질하며 흐른다 하리.
혜일스님이 시로 새겨 놓았던
고려시대 거찰 법화사는
그러나 역사의 흥망성쇠를 따라 흘러내려오다가
18세기 이후에는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무수한 기와들만이
이제는 탑이 되어
옛 영화를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근대에 들어
이곳에 다시 사찰이 창건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26년 초 관음사 주지 도월스님과 안봉려관 스님이
새로이 건축을 증축하며
사세 확장에 나섭니다.
사진은 도월 스님과 안봉려관스님의 공덕비입니다.
원래 없는 플라스틱 연꽃의 향기를
기억해 내려 애쓰다 한 번 넘어진
법화사의 길목에서
무슨 조화인지 철모른 봄꽃이 피어
또다시 발길을 붙들고 맙니다.
겨울을 예고하는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데
어쩌자고
저 봄꽃은 얼굴을 열고야 말았을까요.
늦가을 속에
봄꽃의 향기가 스미는
아슬아슬한 경계 속에서
묶을 수 없는 바람만
한차례 휘돌고 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