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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사찰

월정사

by 산드륵 2008.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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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입니다.

선정에 들어있기 좋은 계절입니다.


겨울나무들이 먼저

고운 좌복을 펼친 곳

제주시 오라동 월정사

1909년 제주 의병항쟁을 이끌었던

김석윤 스님이

1934년 음력 4월 8일

제주 최초의 선원으로 일으켜 세운

뜻깊은 곳입니다.

창건 당시에는

현재의 요사채 자리에

초가 법당이 있었고

그 앞으로

연꽃이 바람타던 맑은 못도

소담스럽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큰 그늘을 드리우는

저 팽나무가 서 있는 곳이

옛 월정사의 정문으로

예전에는

그 앞으로 

길이 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 4.3 사건이 일어나면서

1948년 12월 10일

월정사 건물 5동이 불태워지고

다시 다음해 2월 23일

마지막 남아있던 법당마저

관음사를 불태우고 내려오던 토벌대에 의해

방화되면서

월정사의 옛모습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오늘의 대웅전에

다시 고운 님들이 모셔졌습니다.


옛 법당 자리 옆으로

대웅전이

다시 대웅전 옆으로

극락보전이 들어선

오늘의 모습입니다.


이 극락보전 안에는

제주도 문화재 제 4호로 지정된

니조좌불상과 목조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니조좌불상입니다.

진흙으로 조성된 이 불상은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슬픈 듯 하지만

담담히 바라봐주는

그 눈매가

오래도록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봐 주시는 듯하여

자꾸만 뒤돌아보게 됩니다.


니조좌불상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목조보살상.

 

하나의 향나무를 가지고

온 몸에 걸친 영락까지

정성스럽게 표현해 내었습니다.

 

지장보살님

 


탱화

약사존불

 

지하천불전

 

이곳 월정사 경내의 여기저기에서

중생의 번뇌와 죄업까지도

모두 안고 가려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데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아픈 사연이 남겨진 까닭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정사에서는

발끝만 쳐다보며

탑돌이를 하다가

가신 님의 이야기 하나 듣게 됩니다.


월정사 창건에 기여했던 김석윤 스님에게는

세 명의 출가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막내인 김덕수 스님은

1948년 12월 월정사가  방화될 때

월정사를 지키다가

토벌대에 의해

아라동의 박성내로 끌려가 학살당합니다.

당시 스님의 나이

19세였습니다.

 

덕수스님이 학살당한 후에는

김석윤 스님과, 맏아들 김성수 스님, 둘째 김인수 스님도

차례로

차가운 방안에서

이 세상과의 인연을 놓습니다.

 

사진은 월정사 동쪽에 남겨진

김덕수 스님의 비석입니다.

1956년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덕수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우리들 삶이

안타까운 것은

허공의 소리를 붙들지 못하는 까닭 외에도

또 있나 봅니다.



아라동의 박성내입니다.

4.3당시 이곳은

토벌대가 자주 학살 장소로 이용하였는데

1948년 12월 21일

제주시 중산간과 조천면 관내 마을주민 수백명이

한꺼번에 학살 당할 때

김덕수 스님도 함께 희생되었습니다.  

월정사를 참배하고 나와

박성내에서 서성이다

겨울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잎새는 이미 졌으나

붉게 맺힌 아픔을 지우기는

저나 나나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유초신지곡 중 상령산 (03:11)





   선도주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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