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입니다.
선정에 들어있기 좋은 계절입니다.
겨울나무들이 먼저
고운 좌복을 펼친 곳
제주시 오라동 월정사
1909년 제주 의병항쟁을 이끌었던
김석윤 스님이
1934년 음력 4월 8일
제주 최초의 선원으로 일으켜 세운
뜻깊은 곳입니다.
창건 당시에는
현재의 요사채 자리에
초가 법당이 있었고
그 앞으로
연꽃이 바람타던 맑은 못도
소담스럽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큰 그늘을 드리우는
저 팽나무가 서 있는 곳이
옛 월정사의 정문으로
예전에는
그 앞으로
길이 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 4.3 사건이 일어나면서
1948년 12월 10일
월정사 건물 5동이 불태워지고
다시 다음해 2월 23일
마지막 남아있던 법당마저
관음사를 불태우고 내려오던 토벌대에 의해
방화되면서
월정사의 옛모습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오늘의 대웅전에
다시 고운 님들이 모셔졌습니다.
옛 법당 자리 옆으로
대웅전이
다시 대웅전 옆으로
극락보전이 들어선
오늘의 모습입니다.
이 극락보전 안에는
제주도 문화재 제 4호로 지정된
니조좌불상과 목조보살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니조좌불상입니다.
진흙으로 조성된 이 불상은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슬픈 듯 하지만
담담히 바라봐주는
그 눈매가
오래도록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봐 주시는 듯하여
자꾸만 뒤돌아보게 됩니다.
니조좌불상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목조보살상.
하나의 향나무를 가지고
온 몸에 걸친 영락까지
정성스럽게 표현해 내었습니다.
지장보살님
탱화
약사존불
지하천불전
이곳 월정사 경내의 여기저기에서
중생의 번뇌와 죄업까지도
모두 안고 가려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데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아픈 사연이 남겨진 까닭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월정사에서는
발끝만 쳐다보며
탑돌이를 하다가
가신 님의 이야기 하나 듣게 됩니다.
월정사 창건에 기여했던 김석윤 스님에게는
세 명의 출가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막내인 김덕수 스님은
1948년 12월 월정사가 방화될 때
월정사를 지키다가
토벌대에 의해
아라동의 박성내로 끌려가 학살당합니다.
당시 스님의 나이
19세였습니다.
덕수스님이 학살당한 후에는
김석윤 스님과, 맏아들 김성수 스님, 둘째 김인수 스님도
차례로
차가운 방안에서
이 세상과의 인연을 놓습니다.
사진은 월정사 동쪽에 남겨진
김덕수 스님의 비석입니다.
1956년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덕수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우리들 삶이
안타까운 것은
허공의 소리를 붙들지 못하는 까닭 외에도
또 있나 봅니다.
아라동의 박성내입니다.
4.3당시 이곳은
토벌대가 자주 학살 장소로 이용하였는데
1948년 12월 21일
제주시 중산간과 조천면 관내 마을주민 수백명이
한꺼번에 학살 당할 때
김덕수 스님도 함께 희생되었습니다.
월정사를 참배하고 나와
박성내에서 서성이다
겨울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잎새는 이미 졌으나
붉게 맺힌 아픔을 지우기는
저나 나나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유초신지곡 중 상령산 (03:11)
선도주 (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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