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어둘 곳 없어
오히려 자유로운 마음은
바람을 닮아 갑니다.
옛 정의현성이 자리 잡고 있던
성산읍 고성으로 가는 길.
바람이 스쳐갔는데
갈대들이 젖습니다.
옛 정의현청 터입니다.
원래 정의현은
조선 태종 16년(1416)
이곳 성산읍 고성에 처음 설치됩니다.
그런데 정의현이
위치상 동쪽에 너무 치우쳐
행정적으로 불편했고
가까이 있는 우도를 통해
왜구의 침입이 그칠 때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세종 5년(1423년)에
진사리(성읍)로 옮겨지게 됩니다.
성 벽도 사람이 떠나니
그 위상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잊혀졌다가
이 성 벽은
4.3을 맞으며 다시 쌓아올려지게 됩니다.
옛 성벽을 이어
또다시 쌓아올린 4.3성입니다.
성읍으로 가는 길에
잠시 마주한 영주산.
언제가 다시 올라보고 싶은 곳입니다.
성읍 남문에 도착하였습니다.
탐라지 등 옛 문헌에
'계묘 정월초 9일에 착공하여 13일에 마치니 공(功)이 매우 신비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정월의 칼 바람을 맞으며
징발된 삼읍의 백성들이
2500척 이상의 성을 단 5일만에 쌓아 올렸으니
매우 고통스러웠다라고 표현할 수는 없었을까요.
남문 앞 돌하르방
하르방의 얼굴에서
옛 제주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해 봅니다.
성 안의 우물.
그러나 이 물은 자주 말라버려
성읍 사람들은
현성 동쪽 3리밖에 있는 못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합니다.
옛 집입니다.
짚방석에 앉아
불씨를 살린다며
부지깽이를 들고 법석을 피우면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곤 했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납니다.
아, 시절은 시절대로 버려두고
일관헌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현성 안 중앙에 위치한 이곳은
현감이 일을 보던 곳으로
세종 25년에 세워졌습니다.
일관헌 안의 채수강 선정비
그리고 일관헌 옆으로는 관청할망당.
안할망당이라고도 하는 이곳에서는
예로부터 일관헌 안의 오래된 팽나무를 신목으로 하여
기왓장 위에 비녀, 옥구슬 등을 올려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성읍리사무소가 신축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신목으로 모셨다는 팽나무입니다.
저 나무에
저 바람에
저 하늘에
온통 마음을 맡겼던
제주 사람들의 기원이
오늘날은
어드메서 떠도는지
잠깐 생각을 일으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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