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가없이 슬프기도 한 일입니다.
그런 인연의 일...
하지만 모진 인연 속에도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행복은 모두 그대 드리고 슬픔은 모두 제가 갖고 싶습니다.
조천읍 와산리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 종낭밭으로 가는 길
와산리 본동에서 선인동 방향으로 꺾은 후
200여미터를 달리면 길 오른 편 축사 옆으로조그만 시멘트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끝까지 달리면 밀양 박씨 가족 묘원이 나옵니다.
묘원 뒷쪽 삼나무 숲 속이 잃어버린 마을 종낭 마을 일대입니다.
이곳은 1948년 11월 20일 국방경비대 제9연대에 의해 소각된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당시의 마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12가호에 60여명이 모여 살던 마을 입구에는
아낙들이 두레박을 띄우던 봉천수
마을이 불에 타 없어지고
물가에서 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끊긴 후
두 곳의 봉천수 중에 이곳 샘물은 완전히 말라붙었습니다.
마소들이 목을 축이던 이곳 샘터 역시 말라붙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늙은 아버지의 손마디처럼 굵디굵은 대나무들이 지천으로 자라
하늘마저 가리고 있는 곳.
종낭마을.
그러나그 숲 안에는 불타버린 당시의 마을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돌담입니다.
집터입니다.
주인 없는 집터에서 홀로 뒹굴고 있는 주춧돌입니다.
통시
똥돼지를 쫓아내던 대막대도 그대로 남아 삭아내리고 있습니다.
깨어진 옹기
요강
이곳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다시 찾아오는 날
올래를 찾지 못할까 두려워 옛 모습 그대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 주민들은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일부는 해변마을로 소개되어 생활하다가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희생되었고
일부는 '왕모루곶' '동산전' '새미오름' 등지에 피신했다가 토벌대에 발각되어 총살되었으며
그리고도 남은 사람들은 대흘 초등학교에 함바집을 지어 집단 생활을 하다가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 종낭밭과 더불어 인근의 제비보리와
웃동네 역시 잃어버린 마을이 되어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옛 제주 사람들 집집마다에는 대나무가 몇 그루씩 심어져 있어
제사 때는 베어내어 적꽂이도 만들고 떡구덕, 물구덕도 만들고
혹은 댓잎으로 바람개비 만들어 돌리며 그렇게 살았는데
언제인가 그 대나무가 죽창으로 쓰여 피빛으로 변하더니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가는유일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그 대숲을 하늘을 가린 아픔을 누군가 베어내었습니다.
이제는 고개 들어저 푸른 하늘을 보라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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