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의 길다란 꽃자루 끝에
까만 씨가 맺히면
누이들은
꽃실이 끊어지지 않게 길게 빼내어
그걸 귀걸이라고 두 귀에 꽂고 즐거워 하였습니다.
먼 옛적 이야기입니다.
남제주군 창천 삼거리 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서쪽으로 약 30여 미터쯤 달리면
창고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습니다.
안덕계곡의 상류인 창고천
안덕계곡에서 올라와도 길이 끊겼고
창고천으로 내려가도 길이 끊긴 이곳
물줄기가 숨어 흐르는 동굴 속에서
먼 옛적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잠시 시원한 물줄기에 손을 씻고
하류지역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이곳에서
끊어진 길을 헤쳐 약 50미터 정도 내려가다보면
우측 절벽 아래쪽에 새겨진
임관주 시인의 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귀양살이 하던 집을 나서는 날에
가까이에 있는 시냇물을 먼저 찾았네
푸른 바위는 세물 굽이 곁에 둘러 있고
늦가을 단풍가엔 짧은 폭포가 있네
영조 43년(1768) 사간원 정언으로 있을 때
'삼상 논책 상소문'을 올렸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어
창천에서 귀양살이 하던 임관주가
방면된 다음날 썼다고 전해지는 시입니다.
'귀양살이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었을까'
방면된 이후에도
곧장 제주를 떠나지 않고
이곳 창고천과 한라산 등지에서
시를 지어 바쳤던
임관주의 말을 빌어
이곳의 아름다움을 대신합니다.
이곳에서
안덕계곡 하류로 내려가고자 하나
길이 끊어져 오갈 수가 없습니다.
창고천 상류에서 빠져나와
안덕계곡으로 향하였습니다.
천연기념물 377호라는데
천연의 고요함 377호라 이름하고 싶습니다.
군데군데 바위그늘 집자리도 보입니다.
탐라인들의 태초 주거 환경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임관주의 마애명을 찾아가는 길은
지도가 따로 없습니다.
주어진 길로만 달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길이 끊어진 곳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옛 시인을 만나는 즐거운 산책이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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