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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이재수

by 산드륵 2008.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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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가 울고 있습니다.

 

바루를 엎어

군사정권의 탄압에 저항의 뜻을 드러내는

버마의 스님들 소식 앞에서

제주 4.3 당시 제주 민중들과 함께 하다

한 줄기 소슬한 연기로 스러져간

이일선, 원문상, 이세진, 이성봉 스님 등의 영상이

자꾸만 발길에 밟힙니다.

 


오래된 사진첩을 꺼냅니다.

제주 민중 항쟁의 또다른 얼굴이

사진첩 속에  드믄드믄 숨어 있습니다.



1901년의 이재수입니다.

'천주교 신부를 나처럼 대하라'는 고종임금의 명으로

천주교에 입교하면

관리와 동등한 권한을 행사하고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등 특권을 누리게 되자

일부 천주교도들은 이를 이용하여

갖은 불법 행위를 자행하게 됩니다.



이에 1901년 4월 9일 강우백을 중심으로

봉세관의 수탈과 천주교도의 폐단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며

대정군민들은 집단행동에 나섰습니다.



대정성 인근 홍살문 거리입니다.

민란의 초기 단계인 1901년 5월 14일

제주백성들의 항의에 대해

이교도에 대한 성전을 선포한 천주교인들은

프랑스 선교사의 직접 지휘 아래

대정현으로 쳐들어와

대정성의 군기고를 부수어 무기를 탈취하고

살상을 감행했습니다.




1901년 제주민란을 이끌었던

이재수의 집터입니다.

이재수, 오대현, 강우백 세 장두의 비석이  

홍살문 거리에서 옮겨 이 골목 이 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집터 옆으로 돌아가면

드레물이 보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매몰되어 있었는데

다시 햇살을 보게 되었군요.



각종 폐단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며 시작된

1901년 제주 민중들의 이 이야기는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총칼 앞에서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골목길을 쓸쓸히 지키고 있던

이 삼의사의 비석은 땅에 묻히고

1997년 대정성 앞 현재의 위치에

새로운 삼의사 비가 세워지게 됩니다.



현재의 삼의사비입니다.

처형당한 이재수, 오대현, 강우백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세운 것입니다.

자신들의 뜻을 전하기 위해

대정에서 걸어서

제주읍성으로 향하던 백성들은

명월읍성에서

천주교인들의 급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비로소 1901년 이 이야기는

무장항쟁으로의 성격을 지니게 됩니다. 



옛 사진첩에서 찾은

명월성의 풍경입니다.

 

이재수와 그 날의 백성들이

걸었던 길을

그동안 오가며 찍어두었는데

이제야 꺼내놓습니다.

커다란 만호비가 서 있습니다.

그날 제주 백성들의 흔적은 없습니다.



관덕정 앞

제주시 외곽 황사평에 주둔한 민군은

수차례 제주성을 공격했으나 성문을 여는데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제주성안에서 부녀자들의 봉기가 일어나

마침내 성문이 열렸고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관군에 의해 진압되어 실패로 끝난

1901년 제주민란의 결과

이재수 등은 사형되었고

이 일에 대해 배상하라는 요구에

제주도민 1인당 15전 6리씩 주머니가 털렸습니다.

 

2007년 버마의 민중항쟁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비문을 찬찬히 읽어봅니다.

그리고 철거 압력에도 불구하고

꽂꽂이 서 있는 삼의사비의 그 뜻이

왜곡되지 않고 전달되기를 바라며

...생각합니다. 

 

...무릇 종교 본연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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