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만이라 합니다. 곰궤를 다시 찾은 건...
해안동 리생이의 곰궤를 찾아가는 길에서 어쩔 수 없는 인연으로 다가오신 홍씨 어르신.
1948년 당시 16세 그러나 그날을 피해가듯 59년 동안 이곳을 피해 다니셨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 산책님들을 위해아직도 피비린내가 날 것만 같다는 그곳으로 발길을 옮겨주신
홍씨 어르신께 감사드리며 산책님들과 함께 걷습니다.
1948년 산간마을 리생이에 풍문 하나가 들려왔습니다. 제주 성에 난리가 났다
그러나 풍문에서 멀리 떨어진 이 해안동 리생이 사람들은 산 속에서 탈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1948년 남한 단독선거를 주장하는 이승만 정권의 5.10 선거 강행이 다가오면서
인근 도평, 외도 등 해안가 마을 사람들이 이 리생이 남쪽 붉은 덩어리로 피신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약 30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저 덩어리 속에 숨어있다가
이삼일 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리생이에 군경 토벌대가 몰려온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붉은 덩어리 은신처를 찾아 내라며 총구를 들이대고 몇 죽이고 갔습니다.
그렇게 여름은 갔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왔습니다.
저 올래로 또다시 토벌대도 올라왔습니다.
토벌대의 주둔지입니다.
저 돌담 위로 성처럼 돌들이 둘러싸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풍문에서 멀어지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 마을에도 48년 11월 드디어 소개령이 내렸습니다
16세 어린 청년은 망설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집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쇠촐도 베어야 하고 할 일이 많으니 하는 건 스스로를 위한 변명이었고
이곳을 떠나 갈 곳이 없었습니다.
노루가 내려와 물을 먹고 가면 사람이 지게를 내려놓고 다가가 목을 축이던 '노리물'에는 물이 없어
일년 내내 물이 끊기지 않던 '독승물'에서 목을 축이고
깊은 숲 곰궤로 동무 8명이 숨어들었습니다.
다른 이웃들은 엉카름궤 등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좁은 구멍이지만 들어가면 넓직한 곰궤
그런데 12월 7일이라 하는 어느날 총소리가 들려 이상하여 나가보니
산 아래서 토벌대가 밀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다들 겁에 질려 뛰쳐나갔습니다.
그런데 곰궤 안에 지핀 숯불 연기에 취한 동무 하나는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궤 안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끌고 나오려 했으나 차라리 이 안에서 총 맞아 죽으련다 하며 차가운 땅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동무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곰궤 바로 옆 밭에서 다른 궤 안에 숨었던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잡혀와
사살되는 것을 숨어서 보았습니다.
돌고 돌아 59년만에 다시 곰궤 앞에 선 어르신.
붉어오는 눈시울을 서로 마주볼 자신이 없어 저물어 가는 먼 하늘만 바라봤습니다.
제주의 가을엔 이 집 저 집 제사가 많습니다.
그 연유를 일러줄 어르신들도 이제는 몇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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