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읍 선흘리 보건진료소에서 동쪽으로 난 길로 약 100여미터 들어간 곳에 위치한 불카분낭
'불카분낭'은 불에 타버린 나무라는 뜻입니다.
1948년 제주 4.3사건으로
당시 제주도민의 1/9인 약 3만여명의 백성들이굶어죽고, 총맞아죽고, 불태워져 죽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군경에 의해 선흘리 마을이 초토화되면서 함께 불타버린 후박나무
shoot everyone to death
미군 비밀 문서에 남아있는 제주 4.3 당시 초토화작전을 이끌었던 제2연대 연대장 함병선의 명령입니다.
남김없이 쏴 죽여라는 명령 이후 마을과 함께 불에 탔던 이 나무에
언제부터인가 새순이 돋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람을 타고 송악이며, 줄기사철 나무들이 화상을 입은 후박나무 곁으로 날아왔습니다.
광란의 시절을 견디어 스스로 피워낸 저 초록의 의지는 '평화'
그러나 2008년 들어 4.3의 진실규명을 막는 4.3위원회 통폐합 관련 법안이 한나라당에 의해 국회에 상정되어 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같은 방침을 내놓고 있습니다.
severe tactics
미군도 인정한 '가혹한 작전'이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요?
선흘의 불카분낭을 두고 선인동 주둔소 옛터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선흘2리사무소 앞 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선인동 방향으로 500여미터를 직진하다 보면
길 왼편에 약 15미터의 돌담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49년 이후 경찰 토벌대가 주둔했던 곳입니다.
인근 마을 주민들이 동원되어 성을 쌓았고 성안에는 경찰 숙소 한 채가 지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선인동 주둔소에서 선흘 양잠단지 방향으로약 400여미터를 더 내려오다가 길 왼편 대나무길을 끝까지 따라가면
숲 속에 가려진 또다른 세상도 보입니다.
이제는 넓은 목장이 들어선 잃어버린 마을 '백화동'의 막다른 곳
목장에 다다르기 직전길 왼편 덤불 숲에 숨은 '골연못'
식수용과 우마용으로 나뉘어진 이 300여평의 골연못 인근은
잃어버린 마을 백화동의 중심이었다고 합니다.
백화동의 풍경입니다.
1948년 11월 21일 잿더미로 변한 마을터에 무성한 대숲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마을마다 대숲을 지나는 바람이 일렁입니다.
그 바람은 피빛이 아닙니다. 초록입니다.
과거를 인정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껴안는 이들을 바람은 이념으로 갈라놓지 않습니다.
이념으로 또다시 서로를 가르는가혹한 작전이
이제는 이 땅에서 그만 종결되기를 기대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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