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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눌을 찾으려 했습니다.
몇 번이나 지도를 확인하며 수차례 마을의 흔적을 찾았지만 그러나 어우눌은 없었습니다.
어우눌 대신 조설대를 찾았습니다.
저 비석 바로 아래쪽에 어우눌에 살던 이응호 선생 등이 조선의 국치를 설욕하리라며 새겨넣은 조설대가 있습니다.
조설대(朝雪臺)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 국상이 있을 때 선비들이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해 향을 피우고 제를 올리던 곳이었는데
이응호 등이 집의계를 조직하고 모임을 가진 이후 조설대로 불려져 왔습니다.
그러다가 귤암 이기온 선생 유허지에 있던 문연사가 도로 확장으로 갈 곳이 없게 되자 이곳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릅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글을 음각한 '귤암' 바위
귤암 이기온은 제주에 유배왔던 최익현 밑에서 수학하였는데
그 이기온의 문하생들이 집의계 인사들의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애교대(愛敎臺)
음각이 선명하지 않군요
우백헌(友柏軒)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양부정(養 魚+付井)
이기온 선생에 대한 기록은 관심있으면 확대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어우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담장 아래 앉아 있으면 가끔 옛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는 법인데 이곳에선 그것마저 불가능합니다.
어우눌 아래 해산이로 향하였습니다.
이곳도 어우눌과 함께 제주 4.3 당시 군경에 의해 소개되어 사라진 마을입니다.
빈 터에 가을이 오니 마음이 더욱 차가워집니다.
신제주 빌딩 숲 바로 뒤 우리네 풍경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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