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처럼 빗속에 서 있습니다.
2007년 12월 23일 제주시 회천동 화천사 옆에 세워진 4.3희생자 위령비
산물낭우영, 감낭우영, 드르생이, 소낭굴 회천동 옛 마을과 함께 사라진
1948년 당시의 외로운 영혼들을 추모하며 그렇게 서 있습니다.
화천사 진입 직전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간 곳에 산물낭우영 산물낭우영 마을은
1948년 11월 27일 토벌대에 의해 불태워져 사라졌지만
마을로 들어가는 돌담길은 그날 이후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감낭우영 서회천 마을 입구에서 200여미터 남쪽으로 올라가면
세갈래 길이 나오는데 바로 그 왼편 지경이 감낭우영입니다.
1948년 1월 10일 삼양 주둔 군경 토벌대가 급작스럽게 공격해오자 마을 주민들은 산을 향해 달아납니다.
그중 17명의 주민이 저 길에서 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증언하는 회천동 허언 할아버지
군인들이 온다고 하니까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은 무작정 산을 향해 뛰었지.
그러나 얼마 못가서 감낭 우영 길에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누이와 조카 둘이 총에 맞아 쓰러졌어.
서북청년단은 죽창으로 시체를 찌르고 또 찌르고...
감낭우영의 감나무는 죽어 없어졌고 길은 새로 포장을 했지만 다른 건 예전 그대로야...
살아남은 다른 사람들은 궤에 숨어 견디기도 하였습니다.
게이트볼장이 만들어졌다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이 곳 팽나무 아래로도 궤의 입구가 있었습니다.
옛 기억이 아니라면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가 어렵습니다.
동회천 마을에서 약 2.9km 올라간 곳에는
1949년 2월 4일 토벌대의 제주읍 동부 8리 토벌로 이 마을 주민 40여명이 희생당한 소낭굴이 있습니다.
쇠먹이는 물통길을 따라 계속 들어가면 가족 묘지 옆으로 옴팡한 밭이 보이는데
그 너머에 있는 언덕을 소낭굴이라 부릅니다.
이곳에 조그만 소낭굴이 있어 언제부턴가 이 등성이를 소낭굴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저 안개 쌓인 언덕에 매복해 있던 군인들은 산으로 도망오는 이들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합니다.
전투기도 공중에서 기총소사를 합니다.
소낭굴입니다.
그런데 이날 토벌대는소낭굴 언덕에서 토벌을 진행하던 중
당시 무장대를 이끌던 이덕구 선조의 묘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총을 난사해 비석을 두동강냅니다.
거칠어지는 빗줄기 속에서 총알 자국 선명하다는 그 비석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나 어둠은 너무 빨리 내리고 말았습니다.
토요일 답사에서 이덕구 선조의 묘를 찾지 못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작년 12월 그 묘가 이장되었다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동회천 마을 안길에서 약 200여m를 가다가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물통 왼편 길로 들어서면 동백길을 만날 수 있습니다.이곳에서 계속 직진하면 막다른 길에 축사가 있습니다.
이 축사 가기 직전에 동산 아래로 내려가는 급경사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 왼쪽 밭으로 들어가면 이덕구 가족 묘가 조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7년 12월 조성된 이덕구 가족의 묘지입니다.
제주 4.3 당시 무장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는 조천중학원에서 역사와 체육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습니다.
가운데 동강난 비석이 소낭밭에 있던 이덕구의 할머니 강씨의 비석입니다.
이제 곧 땅에 파묻을 것이라 하는데 그전에 다녀와도 좋을 듯합니다.
민중봉기의 최전선에 섰다가
1949년 6월 9일 623고지에서 총살되어 나무에 꿰어진 채 산을 내려와
민중의 소망같은 숟가락 하나 유산으로 남긴 채 짧은 생을 마감한 이덕구의 비입니다.
그 옆에는 아들 이진우의 비도 있습니다.
살려달라는 7살 아이의 울음에 토벌대는 말합니다. "아버지가 있는 산으로 뛰어라" 그러자 아이는 산을 향해 뜁니다.
그리고 토벌대는 그 등 뒤에 총을 난사합니다.
안개 걷힌 소낭굴 제주의 어머니 한라가 오름마다 흩어진 비명에 안개 뿌려 제 눈을 가리었다가도
의연히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라처럼 그처럼 의연히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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