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당시
마을 주민들을 격리시키고 통제하기 위해 설치된 전략촌 가운데
그 원형이 잘 보존된 곳 중 하나인
함덕리 낙선동 성터가 복원되었다길래
옛 길을 더듬어 다시 찾아 보았다.
48년 4월 3일 이후
사라지는 사람과 사람의 마을 사이에서
49년 4월 낙선동은 완성되었다.
이제는 길을 아는 원혼들만 찾아와 쉬는 쉼팡
젊은 것들은 모두 죽어나가고
늙은이와 아낙네들만 모여든 낙선동 성터 그 입구에
한라산 토벌을 끝내고 오던 중 옮겨 심었다는 폭낭이 짙푸른 눈을 감지 못하고 있다.
군경 토벌대의 작전으로 선흘리가 불에 타서 없어진 후
함덕리 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선흘 주민들과 조천 관내 주민 등을
수용하기 위해 설촌된 낙선동
정문 초소
주민들의 성밖 출입시 양민증 통행증 등을 검사하던 곳
경찰 초소
함덕지서 파견 출장소인 이곳은
주민의 감시와 통제 및 경비 순찰 임무를 맡았다.
스스로의 끼니도 해결 못하는 수용주민들에게
이들을 먹여 살리는 일은
힘. 든. 일.
성문 모서리마다 설치된 2층 망루
밤낮 구별없이 보초를 섰고
특별히 밤에는 5명이 1조가 되어 보초를 서는데
젊은이들이 없으니 대부분 16세 이상의 여자들과 노인들이 보초를 맡았다.
보초 대기소
2층 망루에 1명이 보초를 서고
나머지 4명이 대기하던 곳
추운 겨울에는 이 안에서 불을 피우다 불을 내서
모진 처벌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총안
총을 겨누고 밖을 경계하던 곳이다.
총안을 통한 경비는
특공대로 편성된 남자들이 맡았고
각 성벽마다 2개씩 총 8개가 있었다고 한다.
함바집
수용된 주민들이 살던 곳.
한 동에 다섯 세대씩
칸은 억새로 가리고
집이랄 것도 없는 이곳에서 수용생활을 했다.
낮에는 풀을 뜯어 풀죽을 끓여먹고
밤이면 고단한 몸을 흙바닥에 눕히며 그렇게 그렇게 삶은 연명한다.
이곳 전략촌의 목적은
돌아갈 땅이 없는 주민들에 대한 수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총알받이나 노역자로 쓰기 위한 것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성안의 통시
집단 화장실
동물 농장이 이러했을까...
약 5백미터에 달하는 이 성담이
노인과 여인들에 의해 약 1개월만에 쌓아졌다.
해자가 있었을 곳에
편히 걸으라고 산책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저 먼 길
어떻게 갈 것인가
해자 시설
성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2미터 정도의 구덩이에 가시나무로 메워놓았다.
성밖에서 총안이 더욱 선명하다.
그날은 없었던 두래기
60년 성상을 지내며
소리없이 성담을 타고 올라간다.
역사는 소리없이 반복된다.
깨어있지 않으면 그 소리를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오직 돈냄새만 쫓아가는 이 시절이
두렵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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