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물이 고여 있어
그 이름도 곤을동이라는 이곳에
지금도 고인 물은 여전하지만
1949년 1월 4일
국방경비대 제2연대 1개 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한 순간에 마을은 사라지고 없다.
별도봉 동쪽
화북천이 바다와 만나면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아름다운 포구에 자리한 곤을동
그곳에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 있다.
하천 안쪽의 안곤
바닷물이 오가는 저 하천을 사이에 두고
마을은 안곤, 가운데곤, 밧곤으로 나뉘어 살았다.
안곤으로 가는 길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고려 충렬왕 26년 별도현에 속해 있었으며
작은 공회당도 가진
제주의 전형적인 바닷가 마을
제주 4.3당시
산으로 숨어든 무장대를 방어한다는 구실로
중산간의 사람과 마을을 학살해 나가던
국방경비대가
왜 이 해안마을을 표적으로 삼았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천천히 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마을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농사짓고
고기잡고
그렇게 살던
이 마을은
1949년 1월 4일 오후 3시경 들어닥친 국방경비대에
안곤 22가구 가운뎃곤 17가구가 전소된다.
젊은이들 10여명은 바닷가로 끌려가 무참히 학살당한다.
나머지 주민들은 화북지서로 끌려갔다가
1월 5일 인근의 모살불 해안에서 총살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밧곤의 28가구도 불질러 태워 없앰으로서
곤을동은 완전히 사라진 마을이 된다.
상생이란
화해란
대한민국에서는 죽은 언어이다.
그날 탄내가 멈추지 않던
이 차가운 바닷가를 떠돌았을 까마귀 한 마리
원통함을 삭이고
먼저 용서한다 손내밀었는데
목을 치고 말았다.
거욱대의 표지석마저 산산히 부숴놓고 말았다.
그날 이 바닷가에서
영문도 모른채 죽어간 이들
책임있는 국가권력은 반드시
그날의 그 눈동자와 대면해야 한다.
바닷가에 돌담을 쌓아 파도는 막았지만
국가 권력의 총구는 피하지 못한
곤을동의 이들에게
역사는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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